[뉴스웍스=유광종기자] >이 연재의 모두에 중공군에게 크게 예봉이 꺾여 무너졌던 1950년 10월 말과 11월 말의 상황을 적었다. 최근까지 실은 유엔군과 우리 국군의 북진 뒤에 빚어진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 뒤로는 아주 길고 험난한 후퇴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군의 후퇴는 그 또한 엄연한 작전이었다. 후퇴의 상황이 어쩌면 군 지휘관의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백선엽 장군이 지휘했던 국군 1사단 또한 성난 물결에 밀린 물체처럼 후퇴를 거듭했다. 외곽의 길로 평양을 돌아 황해도를 지나 임진강까지 밀렸다. 월튼 워커
[뉴스웍스=유광종기자] 528년 전 제주 앞바다에서 표류해 머나먼 중국 저장 싼먼에 표착한 조선의 선비 최부는 지금 시각에서 볼 때 매우 특별했다. 죽음 앞에서도 제 소신을 결코 굽히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표류 뒤 처음 뭍에 올라 들었던 마을, 지금 이름 훙먀오(紅廟)촌의 모습이다. 지난 8월 초 이곳을 들렀을 때 현지의 많은 사람들이 “500년 전 이곳을 들렀던 사람의 후손들이 왔다”며 반겨줬다. 더운 날씨에 목이 마른 한국 방문단 일행을 위해 수박을 잘라다 주기도 했다. 최부는 이곳에서 현지 주민들로부터 왜구로 의심을
중국의 지명에 杭州(항주)가 있다. 현지 발음은 항저우다. 이 땅이름 첫 글자인 杭(항)이 우리가 많이 쓰는 航(항)이라는 글자의 원래 형태다. 명사의 의미로 사용하면 물을 건너는 배, 동사의 뜻으로는 ‘물길을 건너다’의 의미다.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도 이곳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가 이 지역의 커다란 강을 건너려다가 사나운 물길 때문에 주저했단다. 그러다가 지금의 杭州(항주) 인근에서 무사히 강을 건너 ‘물 건넌 땅’이라는 뜻의 현재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동남부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곳인 저장(浙江)성의 도회지다.
그렇다고 이곳이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중국은 전란戰亂이 빗발 닥치듯 셀 수도 없이 일어났던 곳이다. 북에서는 유목민족의 침략이 아주 잦았고, 왕조가 권력을 다투면서 생기는 전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늘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피난 행렬에 몸을 실어야 했다.원래 이곳에 쌀을 재배하며 살았던 원주민, 즉 비에트Viet 계통의 피를 지녔으면서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越人(월인)이나 百越(백월)이라는 표기로 등장했던 사람들은 북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중원의 인구와 때로는 아주 격렬한 생존의 경쟁을 벌여야 했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의 이분법적인 구조는 여기서 걷어치우자. 억압의 행위자와 그 피해자라는 단순한 구도에서 베이징을 본다면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보다는 방대한 중국의 국토와 그 수많은 인구를 끌고 가는 황제의 통치행위, 그에 딸려 있는 많은 방략(方略)을 읽는 게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다.이곳은 엉겅퀴가 잘 자랐던 곳인가 보다. 베이징의 옛 이름은 꽤 많다. 그러나 처음의 지명은 어쩐지 이 엉겅퀴를 뜻하는 ‘薊(계)’라는 글자로 시작한다. 지금의 베이징 근처에도 이 글자를 사용한 현(縣)이 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史劇)에 사간(司諫)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간관(諫官) 또는 언관(言官)이라는 직함으로도 나온다. 정무 일반을 감찰하는 사헌부(司憲府)의 대관(臺官)과 함께 병칭해 대간(臺諫)으로도 불렸다. 살피고 경계하는 직무를 지닌 사람이다.한자 초기 바탕에서 司(사)는 일정한 권한을 지닌 채 주술적인 행위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관장하다, 또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의 뜻을 얻었다. 다음 글자 諫(간)은 사람의 언어에서 무엇인가를 가리고 살피는 행위다.따라서 사간(司諫)은 사람 말에
명(明) 나라 때 약학을 연구했던 이시진(李時珍 1518~1593년)이라는 사람이 있다. 1890여 종의 약재(藥材)를 망라해 정리한 책 으로 유명하다. ‘본초(本草)’는 식물을 약재로 다루는 방법에 관한 총칭이다. 다음 ‘강목(綱目)’이 눈길을 끈다.사전적인 정의로는 그물과 관련이 있다. 그물의 큰 줄기를 이루는 ‘벼리’를 綱(강), 그 하부를 이루는 그물의 코를 目(목)이라고 적었다. 따라서 사물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과 그 밑을 받치는 것에 대한 차별적인 지칭이다. 풀자면 핵심과 주변이다. 이에 관한 성어가
강남이라는 이름, 사실 남산이라는 호칭처럼 흔하다. 우리 땅 곳곳에는 강과 산이 있다. 그래서 시냇물 흐르는 남쪽을 江南(강남)이라 적고, 남쪽에 있는 산을 南山(남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강남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의 한 역명을 표시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아울러 서울에도 남산이 있듯이 1000년 고도인 경주에도 남산이 있다. 경주만 그럴까. 전국 방방곡곡 도처에 남산이 있고, 강남이 있다.그럼에도 강남이라거나, 남산이라고 부르면 뭔가 괜히 마음이 아리아리해진다. 추위에 짓눌렸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세상의 구석구석이 들썩거린다
한 도시에 이르러 우리는 먼저 어떤 ‘인상(印象)’을 받기 마련이다. 베이징에서 조금 오래 머문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곳이 있다. 위에서 말한 자금성과 만리장성도 분명 그러하지만, 이곳은 베이징에서 머물며 일정 기간 생활하는 외지의 사람들에게 ‘도대체 여기는 뭐냐’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천안문 광장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창안제(長安街)‘다.이곳은 중국인들이 ‘중국 최고의 거리(神州第一街)’라고 자부하는 거리다. 베이징 시단(西單)에서 둥단(東單)까지 왕복 12차로의 넓은 도로가 4㎞ 이어지며, 그
이곳의 유래는 앞에서 소개한 제물포와 같다. 고구려 때 ‘미추홀’, 백제가 땅을 차지했을 때는 ‘매소홀’이었다는 소개 말이다. 지금은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하늘 문’이다. 인천에 들어선 국제공항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대표적인 공항이었던 김포공항의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래다.원래의 이곳 이름은 인주(仁州)다. 고려 숙종 때 순덕태후 이씨의 고향이라서 경사(慶事)의 원천(源泉)이라는 뜻의 경원군(慶源郡)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인종 때 들어서는 문경태후 이씨의 고향이라서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이어 공양왕 2년인 1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는 베이징(北京)이다. 한반도의 평양과 비슷한 위도(緯度)에 놓여 있는 이곳은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은 지역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이 다녀왔고, 이제 국력을 키워 바야흐로 지구촌의 슈퍼파워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중국의 정치 및 사회 등 모든 분야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베이징-.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드넓은 천안문(天安門) 광장과 고색창연한 자금성(紫禁城), 그리고 만리장성(萬里長城)이다. 조선 왕궁의 경복궁에 비해 훨씬 웅장하게 지은 자금성, 그리고 그 앞에 걸린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영웅
영화관에서 은막과 소리가 합쳐진 시점은 퍽 오래 전이다. 그 전에는 무성(無聲) 영화가 주류를 이뤘다. 소리 없는 은막에 때로 ‘비’가 내릴 적도 있었다. 흑백의 잔영으로 소리 없이 흘러 넘어가는 장면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나름 큰 상상력의 공간으로도 작용했다.그 소리 없음의 무성(無聲)을 떠올리면서 쓴 글이다. 예전에 이미 적었던 내용을 다시 만져 소개한다. 816년 가을이었다. 지금의 중국 장시(江西)성으로 좌천해 사마(司馬)라는 미관말직에 있던 당(唐)의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비파행(琵琶行)’이라는 명시를 남긴다.그
[뉴스웍스=유광종기자] 최부(崔溥)라는 선비가 있다. 조선 성종 때의 사람이다. 1454년 태어나 1504년 세상을 떴다. 그는 사실 평범한 선비, 조선의 관료였을 뻔했다. 그러나 특이한 경력 때문에 지금껏 큰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그의 이름은 매우 높다. 그의 나이 34세 때 그는 제주에 도망을 친 사람들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경차관(敬差官)의 자격으로 제주에 부임했다. 이듬해 1월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급히 배에 올라 고향인 나주로 향하다가 그는 표류하고 만다. 배
장천리(長川里)와 독각리(獨脚里)라는 두 마을의 일부씩을 합쳐 만든 마을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었던 모양이다. 1946년에 정식으로 도원(桃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이 이름은 운치가 있다. 우선 중국 동진(東晋 317~420년) 때의 도연명(陶淵明)이라는 옛 시인이 남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이름을 땄으리라고 본다. 그 내용은 우리에게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살던 한 어부가 복숭아꽃 아름답게 핀 물길을 따라
한 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위세를 떨쳤다. 모두 다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 일종의 전염병이자 돌림병이었다. 누구로부터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병 말이다. 당시에는 사망 환자의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우리의 경각심이 매우 높아지기도 했다.이런 병은 한자 낱말로 흔히들 역병(疫病)이라거나, 역질(疫疾), 여역(癘疫), 염역(染疫) 등으로 적는다. 온역(瘟疫), 염병(染病)도 마찬가지 뜻이다. 모두 균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병이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지는 그런 병에 일반적으로 붙는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