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북 사람들의 특징을 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아침은 껍질 속의 물, 저녁에는 물속의 껍질(早上皮包水, 晩上水包皮).” ‘아침’을 이른 앞 구절은 이곳 전통 음식인 灌湯包(관탕포)를 일컫는다. 이곳 사람들이 즐기는, 육즙(肉汁)이 찰랑찰랑하게 고인 물만두를 가리킨다. 그 물만두를 껍질(皮)이 물(水, 육즙)을 감쌌다(包)라고 표현한 것이다.뒤의 구절은 ‘목욕’을 형용했다. 목욕탕 물(水)이 사람의 가죽(皮)을 품었다(包)는 뜻이다. 즉 저녁에는 예외 없이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즐긴다는 얘기다. 아침에는 그저 먹기 좋
옷감을 짤 때 날줄과 씨줄이 있다. 날줄은 세로, 씨줄은 가로 방향이다. 이 두 줄을 겹쳐 놓으면서 직물(織物)을 짠다. 세로 방향으로 난 날줄을 일컫는 단어가 ‘경(經)’이고 씨줄이 ‘위(緯)’다. 지구를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로 표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문제는 경제(經濟)다. 지금의 ‘경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먹고 사는 일, 그에 수반하는 여러 조건들을 해결하고 나누며, 때로는 주고받는 모든 행위가 경제에 들어간다. 이 경제라는 낱말의 ‘경’이라는 글자는 여기서 ‘운영하다’ ‘다루다’ 등의 의미다.그 뒤의 ‘제(濟)’
잔(殘)이라는 글자는 다른 존재 등을 ‘해친다’는 게 으뜸 새김이다. 거기서 다시 본체(本體) 등이 잘려나간 상태, 즉 ‘나머지’의 뜻을 얻는다. 잔여(殘餘), 잔존(殘存) 등이 그 예다. 이어 ‘잔인하다’ ‘잔혹하다’ 등의 새김까지 획득한다.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잔인(殘忍)’이다. 앞의 ‘殘’이라는 글자는 그 새김이 명확해서 문제가 없다. 뒤에 붙는 ‘忍’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이 글자의 우선적인 의미는 ‘참다’다. 인내(忍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왜 ‘殘’에 이어 붙여 ‘잔인하다’의 조어(造語)가 가능해진 것일
우선 고전의 명시 한 구절 감상하자.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다. 제목은 ‘오의항(烏衣巷)’이다. 유비와 관우가 등장하는 삼국시대 때 검은색 옷(烏衣)을 입은 군대가 주둔했던 거리(巷), 나중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가 시의 배경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세월이 수 백 년 지난 뒤인 당나라 시절 마치 서울의 ‘강남 청담동’ 같았던 고급 주택가가 평범한 거리로 변한 모습을 읊는다.“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시인은 옛날 고관의 멋진 집에
서울시가 여의도 권역을 개발하면서 함께 번창의 흐름을 탔던 곳이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이 많았고, 이곳을 거쳐 가는 인구가 많아 서울 서남 권역에서 가장 유명해진 지역이다. 한강에 붙어 있어 포구를 의미하는 포(浦)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앞의 ‘영등(永登)’이 문제다. 지명을 풀어놓은 사전을 들여다봐도 이 글자의 조합을 자신 있게 설명하는 곳은 없다. 그러나 지명만으로 볼 때 이 ‘永登(영등)’이라는 글자의 조합은 곳곳에서 나타난다.먼저 경남 거제도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또는 그 전의 기
그런 장쑤성의 강남(江南)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강북(江北) 사람들? 적어도 그곳 강남의 사람들은 강북의 사람들을 자신과는 별개의 존재, 나아가 ‘형편없는 게으름뱅이’ 정도로만 본다. 그러나 역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곳 또한 만만찮다. 비록 지금의 상황에서 장쑤성 강남 사람들이 훨씬 잘 살고, 좋은 옷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그 정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오히려 장쑤성 강북의 사람들은 강남의 사람들을 우습게 볼 만큼 자부심이 가득하다. 우선 중국 전역을 통일한 뒤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다 금세 사라
> 되돌아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1950년 12월 장진호 남쪽 하갈우리까지 진출했던 미 1해병사단이 후퇴에 나서는 모습이다. 강풍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깊은 눈 속. 개마고원의 한겨울은 그들의 발길을 사정없이 휘감았다. 그럼에도 미 1해병사단은 중공군의 포위를 피해 퇴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북진하는 길에 심어뒀던 요소요소의 소부대 병력이 다행히 중공군의 접근을 막았다. 나아갈 때 물러설 때를 생각해 닦아둔 하갈우리의 비행기 활주로도 한 몫 크게 했다. 부상자를 남겨두지 않고 전원 후송한다는 해병대의 철칙은 이 비행기 활주로
한국을 늘 뜨겁게 달구는 단어가 시비(是非)다. ‘옳음’을 의미하는 ‘是(시)’와 ‘그름’을 뜻하는 ‘非(비)’라는 두 글자가 함께 병렬해 있는 상태다. 이렇듯 서로 뜻이 반대인 글자를 나란히 놓아 상황에 대한 판단 등을 묻거나 가리키는 식의 단어는 즐비하다.위냐 아래냐를 따지자는 게 상하(上下), 낮과 밤을 가리키는 주야(晝夜), 밝음의 여부를 묻는 명암(明暗), 추위와 더위를 표현하는 한서(寒暑), 꽃 등이 피고 짐을 따지는 영고(榮枯) 와 성쇠(盛衰) 등이 있다.이 번 글의 주제는 그러나 ‘시비(是非)’다. 이와 비슷한 새김의
경상도 사투리에 ‘대끼리’라는 말이 등장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짱~’이다. 아주 좋은 것, 훌륭하기 그지없는 것, 대단하게 좋은 것, 말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좋은 것…. 그래서 흐뭇한 말이다. 단지 발음에 된소리 ‘끼’가 들어가 속어의 느낌을 풍기므로 맘껏 말하기가 좀 뭐 하지만.이 말 ‘대끼리’의 정체는 대길(大吉)로 보인다. 우리 설이나 입춘이 다가오면 대문에 걸어두는, 그래서 우리에게 어딘가 눈에 익은 한자 표현 말이다. 바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입춘은 새해를 맞이해서 처음 다가오
쑤저우라는 이름 앞에 등장한 명칭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더 유명하다. 그 이름은 姑蘇城(고소성)이다. 지금의 쑤저우를 근거지로 삼았던 오나라가 춘추시대 맹렬하게 세를 확장하면서 남북으로 인접한 나라들에 상당한 위협을 줬고, 그런 오나라의 문화적 맥락이 이곳의 독특한 인문과 함께 영글어 역대 문인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나라 장계(張繼)라는 시인이 남긴 작품이 아주 유명하다. 그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다. 달 지고 까마귀 우니 서리 찬 하늘이라. 月落烏啼霜滿天강 단풍, 고깃배 등불에 시름겨운 잠자리. 江
눈이 애꿎다 할 것이다. 순백의 이미지로 청결함을 상징하는 제가 욕됨을 씻는다는 ‘설욕(雪辱)’이라는 낱말에 등장하니 속이 상할 법하다. 이 겨울 서울 등 중북부 지역에서는 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내린 눈이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겨울이 이제 다 갈 무렵에 새삼 눈을 떠올려본다.구름에 섞인 물의 기운은 날씨가 차갑지 않을 경우 비로 내린다. 반대로 어느 정도 이하의 기온에 도달하면 얼어버린 결정체로 땅에 닿는다. 그를 눈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雪(설)로 적는다. 비를 의미하는 雨(우)에 눈의 결정을 가리키는 아래 부
할리우드 서부영화는 대개가 이렇게 펼쳐진다. 온갖 악랄한 짓을 하던 나쁜 놈은 착한 보안관과 대결하다 죽고, 보안관은 미녀까지 차지한다. 이른바 ‘승자독식’의 장엄한 결론이다. 하지만 영화 아닌 실제의 세계는 다르다. 정의를 구현하는 용사의 세계에 생각지 못했던 ‘치사한 놈’이 슬그머니 들어오면서 정의는 곧 허망해진다.정의가 최고였던 세상에 ‘알고 보면’이라는 ‘사연’이 슬쩍 발을 들여 놓는 것이다. ‘알고 보니’ 보안관은 마약상에게 뇌물을 받는 타락한 경찰이었더라. ‘알고 보니’ 악당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웃이었으며, ‘알고 보
이 오나라 지역은 춘추와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시황이 중국 전역을 통일할 무렵까지 아주 강한 상무(尙武)의 전통을 지녔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시황이 사망하고 중국 전역이 다시 혼란의 국면을 맞이할 때 항우(項羽)의 삼촌인 항량(項梁)이 이곳 쑤저우에서 반란의 깃발을 올리기도 했다. 그 뒤를 따른 사람이 바로 그의 조카인 항우(項羽)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간장과 막야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중국 10대 명검을 만들어낼 정도로 이곳은 원래 상무(尙武)의 분위기가 흘렀다는 점 말이다. 그로부
이곳에는 외곽을 흐르는 두 하천이 있다. 중랑천과 우이천이다. 월계동은 그 둘로 바깥을 형성하고 있는데, 두 하천 사이에 있는 모습이 멀리서 바라볼 때 꼭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선은 동네 이름이고, 다음은 월계(月溪)라는 역명이다.우리가 이 역에서 주목할 한자는 달을 가리키는 月(월)이다. 이 글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1월에서 12월까지, 한 해를 이루는 달의 단위에 들어가 있는 글자여서 우선 그렇다. 그리고 밤의 허공에 떠서 때로는 지구를 휘영청 밝은 빛으로 비추는 그 달을 모를 사람은 당연
소질을 적는 두 한자는 모두 ‘바탕’을 일컫는다. 아무런 가공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 상태 그대로의 바탕을 가리킨다. 앞의 글자는 그래서 ‘희다’라는 새김을 얻지만, 처음부터 색깔을 일컬었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무 흔적도 올리지 않은 백지를 상상하면 좋다.공자의 어록에 등장하는 성어 가운데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다. 가공을 거치는 게 ‘文(문)’, 그렇지 않은 것이 ‘質(질)’이다. 둘이 서로 조화를 이뤄 ‘빛나다’는 의미의 ‘彬彬(빈빈)’에 이르러야 한다는 게 공자의 주장이다. 쉽게 말하자면, 타고난 바탕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