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앞에 먼저 닿는 기상(氣象)의 하나가 바람이다. 바람은 그래서 비를 부르는 조짐이다. 바람과 비를 연결한 시구는 많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 하나가 있다.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이 적은 “산비 오려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 찬다(山雨欲來風滿樓)”는 표현이다.멀리 보이는 산에 내리는 비, 그에 앞서 먼저 닿아 마루 가득 차는 바람을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으로 잡아 그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시다. 여기서 바람과 비는 그저 자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달리 암시하는 무엇이 있다. 그 둘은 기상의 현저한 변화를 상징한다.
껍질을 벗는 일이 탈피(脫皮)다. 앞 글자 脫(탈)은 일반적인 풀이에 따르면 ‘동물의 몸에서 뼈를 제거하다’의 새김이다. 좀 더 자세한 풀이는 글자의 뒷 요소인 兌(태)가 주술적인 행위에서 신기(神氣)가 내려 사람이 환각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든 경우를 지칭한다고 설명한다.그 경우에 다시 육신을 가리키는 ⺼(육)이라는 요소가 붙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정신의 상태를 지칭한다고 봤다. 일반적인 풀이나, 좀 더 자세하다는 풀이의 새김은 대동소이하다. 무엇인가가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다. 탈피(脫皮)는 겉 피부, 또는
> 중공군의 공격은 늘 사전 포격과 함께 벌어졌다. 소련 군대 특유의 전법이었다. 지니고 있던 화력(火力)을 자신이 뚫어야 할 지점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보통은 1시간 정도 이어지는 게 관례였다. 1951년 5월 16일 오후 4시경 중공군은 한국군 3군단의 방어지역 동쪽 견부(肩部)에 해당하는 미 10군단 예하 한국군 7사단의 방어지역을 집중 공격했다. 이곳을 뚫어 북동쪽에 있는 한국군 3군단의 배후(背後) 지역을 선점하려는 계획이었다. 치열한 포격을 동반한 중공군 공세에 힘겹게 버티던 한국군 7사단은 결국 물러섰다. 이로써 한국
죄를 지으면 갇혀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법치(法治)의 틀이 세워진 뒤에 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죄를 지어 갇히는 사람은 죄인(罪人)이자 범죄인(犯罪人), 그가 갇히는 곳은 감방(監房)이자 감옥(監獄)이다. 죄인이 갇히는 곳의 별칭은 적지 않다. 형무소(刑務所)도 한 예에 해당한다.요즘은 구치소(拘置所)와 교도소(矯導所)가 자주 쓰이는 말이다. 유치장(留置場)도 비슷한 맥락에서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나중에 선을 보인 단어들이다. ‘감옥’이라는 말 자체도 출현은 퍽 늦다. 중국에서는 청(淸)나라 이후에야 비로소 지금의 뜻으
그 반대인 산의 북쪽과 강의 남쪽이 볕이 덜 들어 어둡고 차가우며 습기가 많은 陰(음)으로 지칭했다. 산의 남쪽에 볕이 잘 드는 일은 지구 북반구(北半球)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에 비해 강의 흐름은 중국의 지리적 특성이 돋보인다. 중국의 큰 하천은 대개 서북에서 동남으로 흐른다.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이 동남쪽으로 흘러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을 기준으로 할 때 남쪽이 그래서 陰(음)에 해당한다고 봤다.그렇게 강을 기준으로 남쪽을 陰(음)이라고 하는 지칭은 우리 한반도의 지리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대
보통은 아전(衙前)의 동의어로 쓰이는 말이 서리(胥吏)다. 중앙과 각 지방 행정부서에서 말단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다. ‘아전’이라는 단어는 관아(官衙)를 가리키는 衙(아)에 ‘앞’을 가리키는 前(전)을 붙여 관공서에서 실무를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로 풀 수 있다. ‘서리’는 오랜 동양 정치체계 속에서 실무자를 가리켰던 胥(서)와 하급 직원인 吏(리)의 합성이다.이들은 보통 문서 작성, 공문서 옮겨 적기, 죄인의 압송이나 형 집행, 문서 전달 등의 온갖 행정에 필요한 실제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다. 호칭은 매우 다양하다. 비교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무시무시한 집단이다. 그래서 군대의 깃발에는 사나운 맹수, 그리고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 등을 그렸다. 그래서 보통 군대의 깃발을 일컫는 단어가 아기牙旗다. 그런 깃발을 올려 세우는 일이 바로 건아建牙다. 그런 깃발이 세워져 있는 곳이 곧 아문牙門인데, 군대의 정문을 일컫다가 나중에는 그런 흉내를 낸 일반 관공서의 대문도 가리켰다. 그러면서 牙(아)라는 글자가 衙(아)로 변신해 나중의 일반 관공서인 아문衙門으로도 이어졌다. 따라서 관공서의 일반 명칭인 官衙(관아)도 官牙(관아)로 쓸 수 있는 것이다.건제建制라는
때로는 설, 때로는 한 해에 찾아드는 절기를 가리키다 다시 때로는 한 해 중의 어느 때, 또는 그저 세월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는 말이 세시(歲時)다. 따라서 함의가 여럿이다. 이 글을 적는 날이 한 해의 스물 넷 절기 중 스물둘째인 동지(冬至)여서 떠올리는 말이다.시간의 갈마듦은 꾸준하다. 해가 떴다 지고, 달이 스쳐 지나가고, 그로써 한 해도 저문다. 늘 변함없는 시서(時序)의 흐름이지만 그 속을 나그네처럼 스쳐가는 사람에게는 빠르게만 느껴진다. 동지 지나면 양력의 한 해는 곧 저물고 만다.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의 시간은
문제가 생기면 고쳐야 한다. 고치는 일은 개선(改善)과 개량(改良)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고침도 있다. 면모를 일신하고, 뿌리와 틀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그를 개혁(改革)이라고 부른다. 털이 달리고, 피가 묻어 있는 동물의 껍질은 무두질을 거쳐야 쓸 모 있는 가죽으로 거듭난다. 그 정도의 완전한 탈각(脫殼)에 이르는 일이 바로 개혁이다.한국사회는 개선과 개량 정도로 가늠해도 좋은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그보다는 얼굴과 몸체를 모두 바꿔야 하는 개혁이 절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개혁
이 말 함부로 쓸 일은 아니다. 공포를 담은 말이기 때문이다. 왜 무서울까. 기존에 있던 것을 모두 없애고 부정함으로써 닥치는 결과가 매우 참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革命)은 그래서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단어다. 뒤집어엎을 만한 일은 따라서 우리 삶속에서 드물게 발생한다.사람 사는 사회는 늘 새로움을 좇는다. 개선(改善), 개량(改良), 개조(改造), 혁신(革新), 쇄신(刷新) 등은 그래서 늘 필요하다. 어떤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적절하게 손을 대 고치는 일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그런 적정량의 고침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사회 저
> 6.25전쟁 중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꼽히는 싸움이 있다. ‘아군의 패배’를 거론할 때다. 전체 전쟁 중에서 아군은 꽤 많은 패배를 기록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린 점은 맞다. 그럼에도 패배를 제대로 적어야 옳다. 이런저런 이유로 패배를 제대로 적지 않을 경우 그런 재앙은 또 닥치기 때문이다. 그런 패배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싸움이 바로 ‘현리 전투’다. 1951년 5월 16일 불붙은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의 싸움이다. 그 전투의 개요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중공군은 중
건국대학교 입구에 있다고 해서 붙인 역명이다. 1980년 첫 개통 때는 화양(華陽)이라는 역명으로 출발했다가 1985년 지금의 역명으로 바꿨다. 2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 그리고 주변에 즐비한 음식점 등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다.역명에 대학 이름이 붙을 때는 가능하면 피해서 가자는 게 이 책의 취지다. 그러나 이 번 건대입구역은 풀기로 했다. 건국建國의 建(건)이라는 글자는 한자세계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어서 그렇다. 아울러 원래의 역명이었던 화양華陽이라는 이름에도 그럴 듯한 유래가 있기 때문이다.建(건)이라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서로 부닥치는 일이다. 마주 오는 둘이 급기야 접촉의 수준을 넘어 “꽝~”하면서 크게 맞닿는 일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깨지거나 부서지는 상황인데, 충돌(衝突)은 그를 일으키기 전의 동작이나 행위다.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는 衝(충)과 突(돌)이다. 앞 글자는 초기 형태에서 큰 길을 가리키는 行(행)과 앞으로 나아가 뭔가를 때리는 글자 요소의 합성으로 나온다. 나중에 이 글자가 얻은 뜻이 하나 있다. 커다란 수레, 또는 전차(戰車)다.이 수레, 전차는 평범한 크기나 범상한 규모를 넘어서는 것이란다. 일반적인 수
글자 그대로 풀면 겨울(冬)의 하늘(天)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이 날씨를 가리키기도 해서 보통 ‘겨울 날씨’ 아니면 ‘겨울’ 자체를 말할 때도 있다. 요즘 중국에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지칭 뒤에 고루 이 天(천)을 갖다 붙여 계절 그 자체를 지칭한다.지구에서 겨울이라는 계절을 맞는 곳의 기후 특성은 대개 비슷하다. 춥고 쓸쓸하다. 태양이 먼 거리에 놓임으로써 기온이 내려가고, 식생(植生)들은 생존을 위해 여름 내내 키웠던 잎사귀를 떨어뜨린다. 그러니 겨울의 풍경은 대개 비슷하다. 땅은 얼고 식생은 헐벗는 모습이다.겨울의 어
마음으로 여긴다 해도 좋다. 머리로 엮는 생각이라 해도 괜찮다. 어쨌든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일컫는 말이 바로 정황(情況)이다. 앞뒤 사정을 이리저리 엮어 실마리가 드러날 때, 그로써 어느 정도의 윤곽이 드러날 때 쓸 수 있는 말이다.앞의 情(정)이라는 글자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忄(심), 땅에서 식물 등이 돋아나는 모습의 生(생), 다른 것을 물들일 수 있는 염료를 가리키는 丹(단)이라는 세 글자 요소의 합성이다. 그에 앞서 먼저 살펴야 하는 글자는 靑(청)이다.이 글자 풀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