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2.07 10:31

고3 때부터 슬금슬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두 시간 일찍 수업을 듣고 0교시 공부를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서 열 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편도 한 시간 반 거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항상 잠이 모자랐다. 그럴 때마다 기댄 것이 커피였다.

결정적으로 커피에 의존하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면서였다. 매일 아르바이트와 예습 복습으로 잠은 항상 부족했다. 졸지 않으려고 강의 전에는 식사를 거르고 수업 사이사이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날카로운 긴장과 더불어 커피 효과는 잘 들었다. 꽤 괜찮은 내 성적표의 일등 도우미는 역시 커피였다.

고단한 육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커피를 생각하면 커피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볼테르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셨고, 스탕달은 커피에 대한 찬사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달콤하다"를 남겼으며, 고흐는 식사를 하지 않고 커피만으로 며칠을 버티며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커피를 찾았다. 그러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커피밀을 그린 정물화, 카페를 공간으로 한 장르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그림은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도 없다. 여기 이 그림, 카미유 피사로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젊은 여농’ 역시 그중 하나다.

Camille Pissaro <Young Peasant Having Her Coffee> 1881

젊다기보다는 어려보이는 여성 한 명이 커피잔을 젓고 있다. 커피숍에서 흔히 사용하는 무늬가 섬세하고 금테가 둘러진 고급 커피잔과는 너무도 다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크기다. 둥근 모양도 투박하고 어그러져 보인다. 제목으로 보아 이 여성은 매일 자연 안에서 흙을 파고 노동하는 농부의 신분이다. 구겨지고 후줄근한 상의와 하의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예쁜 곳이라곤 한 군데 없는 영락없는 작업복일 뿐이다. 숙인 고개 위로 얹힌 머리는 단정하지만 그 역시 꾸민 데라곤 없다. 가장 일하기에 간편한 얹은 머리이다. 얼굴에는 근육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뿐인데 이 그림은 왜 이렇게 감동적인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인상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사람을 사랑한 화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을 주제로 한 인상주의자로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유명하지만 르누아르가 인체와 피부의 아름다움에 그 시선을 고정시켰다면, 카미유 피사로는 인간의 삶 자체에 그 시선을 고정시켰다.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심정적으로 지탱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지켜본 모든 인간에게 애정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특히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농부들의 생활이었다. 그의 초기작인 농원 연작(農園 連作)은 그 따뜻함으로 유명하다. 피사로가 인상주의에 뛰어들기 전에 자연주의 화파였던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시적인 풍경화에 매혹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농부에 대한 시선에 일관적인 애정의 흐름이 있음이 분명하다.

인상파 색채 이론의 객관성과 다르게 피사로의 작품에는 주관적인 온기가 충만하다. 인상파의 색채와 터치는 피사로의 그림에 빛나는 색채감을 부여했지만 피사로만의 독특한 감정이 그 색채 사이에 파고들어 사랑과 온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물질의 겉색채 이상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은 아무런 감정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카미유 피사로의 시선과 붓질은 그녀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당연히 마시게 되는 커피는 당연한 하루의 노동을 의미한다. 그러한 당연한 노동과 당연한 하루가 피사로에게는 약간의 안타까움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동하기에는 너무 어린 그녀에 대한 애틋함, 매일의 노동에 대한 존경, 일상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생활감에 대한 위로 같은 감정이 그림에 스며 있다.

일상은 늘 팍팍하고 에너지는 부족하다. 이 때 윤활유가 되어 주는 것은 한 잔의 커피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삶 역시 커피와 당연히 함께한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꼴깍꼴깍 공급한다. 커피는 몸을 일깨우는 촉매재가 된다. 비실비실한 육체에 커피를 부어서 에너지를 불태운다. 각성을 위한 음료로서든 순간의 휴식으로서든 일하는 이에게 커피만큼 자연스런 위로가 또 있을까?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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