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13 15:39

집안일을 돌보는 이를 일컫는 말이 가신(家臣)이다. 왜 굳이 臣(신)이라는 말을 붙일까 살짝 의문이 든다. 이 글자가 보통은 어엿한 직함을 지니고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많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의 원천을 따져보면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臣(신)은 원래 전쟁 등으로 잡힌 이가 어딘가에 붙들려 와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글자다. 전쟁 포로, 나아가 그런 상황에서 붙들려 와 잡일을 하는 노예인 셈이다. 따라서 가신(家臣)이라고 적으면 일차적으로는 집안의 노예, 다음은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의 뜻이다.

그보다 세월이 흐른 뒤에 자리를 잡은 뜻은 집 심부름꾼이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2200여 년 전인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접어들면서 가신이라는 낱말은 제후(諸侯)라는 지역 권력자 밑의 벼슬아치 집에서 각종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제후 밑의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사는 집에 함께 살면서 그 집안의 각종 대소사를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위로는 벼슬아치의 문서 작성, 회계, 책략 구성으로부터 아래로는 수레와 복장, 말(馬) 등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다. 따라서 벼슬아치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관리하는 책임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또한 이 가신이라는 직함이 어엿하게 자리를 잡은 곳이다. 역시 같은 이름의 전국시대에 유행을 탔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의 가신이 중국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개 무사(武士)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력을 행사하는 무사로서 제 영주를 모시고 전쟁터에 함께 나아가는 일이 주요 임무였다고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가신은 문객(門客), 식객(食客)과는 달랐다. 문객과 식객 등은 특별한 재주 하나 이상씩은 품고 공경대부의 집안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집 주인이 뭔가를 펼치려고 할 때 자신의 재주를 동원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문객과 식객은 무사 출신의 일본 가신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먼저 등장한 중국의 가신 개념이 요즘 한국의 언론들이 많이 사용하는 ‘가신’의 맥락이겠다. 한국 언론들이 최근 들어 사용하는 ‘가신’은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여권 내부 갈등의 한 주체,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추종 그룹인 ‘친박’을 지칭한다.

평소에 날카로운 무예를 갈고 다듬다가 유사시에 제 주인을 따라 전쟁터에 나가 목숨까지 바치는 무사라기보다 박 대통령을 집안 어른으로 받들며 고개를 주억거리기에 바쁜 중국 전국시대 집안 심부름꾼에 가깝다. 이런 가신들은 제 집안 주인의 잘못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새누리당 친박은 그 동안의 행태를 보건대 '가신'이라고 지칭해도 좋을 만한 충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권의 의정 참여자이면서도 오로지 대통령의 위세에 편승해, 대통령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만을 좇고 따르며 행동한 전력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친박들이 호통까지 쳐가면서 주인 잘못 감싸기에만 나선다면 더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집안의 심부름꾼, 나아가 집의 노예인 가노(家奴)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의 이익은 건질지 모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대통령의 착오를 바로잡지 못해 사회와 나라를 망칠 수 있는 까닭이다.

기르는 개가 사나우면 술을 파는 가게의 술이 쉬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狗猛酒酸(구맹주산)이라는 한자 성어다. 가게 문을 지키는 개가 사나워 사람 발길이 끊겨 벌어지는 일이다. 친박은 이제 제 자리를 정리해야 할 때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벌어진 작금의 사태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납게 짖어대면 우리사회의 보수가 빚어낸 술이 맛을 잃는다. 그로써 보수의 축이 사라지면 이 이 사회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다. 이제 그만 사납게 짖는 일을 멈추고 제 자신의 성찰에 들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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