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재천기자
  • 입력 2017.02.08 13:43

[뉴스웍스=이재천기자]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직선제에 의한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얻어냈다. 하지만 직선제로 인해 강화된 제왕적 대통령제는 집권 4년차 대통령 중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소통령, 홍삼트리오, 봉하대군, 만사형통 등 친인척·측근 비리라는 부끄러운 '전통'을 고착화시켰다.

더욱이 이전까지의 친인척·측근 비리는 대통령 몰래 권력을 휘둘러 문제가 됐던데 비해 이번에는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공적 시스템을 와해시켰다.

'최순실 게이트'는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한 관가는 물론 정계, 재계, 학계 등 너나 할 것 없이 부실한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대변한 ‘종합선물세트’나 마찬가지다.

2016년 국민들이 든 촛불은 “우리가 직접 뽑은 대통령을 우리가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역사에 남긴 동시에 “대한민국, 이대로는 안된다. 잘못된 국가 시스템을 재건축해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미래를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산업화→민주화→선진화를 위한 '국가시스템 개조'로 승화시켜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표출한 ‘촛불 에너지’를 대한민국 개조의 동력으로 삼고 수십년간 쌓인 적폐를 해결하는 ‘제2의 건국’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 탄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이유다.


◆국회의 견제·감시권한 강화 시급

전문가들은 국가시스템 재정립을 위해 청와대의 독주나 불투명성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최순실 청문회에서도 보듯 주인공인 최순실이 불출석해도 국회가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구조, 국회의 자료 제공 요구에 청와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 등을 들어 이를 극도로 제한할 수 있는 구조로는 권력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국회에 상시청문회를 도입한다든가 증인 출석이나 자료를 요구하면 반드시 응하게 하는 권한 등을 더 강화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청와대의 예산사용 내역, 출입기록 등 통상적인 정보들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대통령이 재벌총수를 독대한 사실이 정확하게 기록되는 시스템, 최순실이나 차은택, 고영태 등 ‘비선’이 날뛰면 감독 당국이 바로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최순실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은 개헌 통해 정치판 혁신해야

1997년 외환위기가 부채 의존 경제를 털어내는 전환점이 됐다면 이번 탄핵 사태는 기존 정치판을 혁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금부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6개월여 기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정치권은 판을 혁신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개헌에도 적극 나설 수 있어야 한다.

‘87년체제’가 만들어낸 제왕적 대통령제, 모든 권력이 청와대로 향하는 현 체제는 민주주의보다 왕정시대가 더 가까울 수 있음을 최순실 사태가 보여줬다. 그동안 87년 체제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오래지만 쉽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권력구조,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녹여낼 수 있는 시스템 개조가 필요하다.

책임총리제건 이원집정부제건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건 한국의 정치현실과 시대에 걸맞게 다양한 시민들의 기대와 욕구를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국회중심정치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치권은 더이상 당리당략, 권력투쟁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협치를 통해 미래의 국가 틀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몰아가야 한다.

정치의 질이 향상되면 국민의 자유, 안전, 복지가 증진될 수 있으며 국민의 정치의식과 시민문화도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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