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14 16:14

조선 왕조에 줄곧 이어졌던 악습의 하나가 노비(奴婢)를 제도로서 인정했던 일이다. 노비는 종이나 하인, 머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던 존재다. 노예(奴隸)라고도 부른다. 달리는 노복(奴僕)으로도 일컬었다. 누군가에게 잡혀 인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잡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奴(노)는 폄하하는 뜻을 지닌 글자가 다 그렇듯이 ‘女(여)’가 등장한다. 원래 奴(노)의 초기 꼴은 여자를 붙잡는 모습이다. 여성 등을 잡아 데려와 일을 시키는 일, 그 결과로서 남에게 매여 심부름하는 이를 지칭하는 글자로 자리 잡았다.

隸(예)라는 글자는 일반적으로는 동물의 꼬리를 붙잡는 일로 푼다. 따라서 어딘가에 붙잡혀 있는 상태를 일컬었다. 그로부터 나온 단어가 노예, 직접 누구 또는 어딘가에 매여 있는 경우를 지칭하는 예속(隸屬) 등이다. 서체의 일종인 예서(隸書)도 진나라 이후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던 소전(小篆)의 ‘보완 글씨체’로 풀 수 있다.

僕(복)이라는 글자는 원래 글자꼴이 다소 복잡하다. 풀이는 대개 일치한다. 누군가 망태기 등을 들고 무엇인가를 담는 행위를 표현했다. 따라서 주인의 뜻에 따라 쓰레기나 분뇨 등을 담아 처리하는 일, 또는 그런 행위에 종사하는 사람을 그렸다. 그로부터 종이나 머슴의 뜻으로 발전했다.

하인은 한자로 下人이라고 쓴다. 아랫것, 상것 등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노비(奴婢)라고 하면 남자 종과 여자 하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노복(奴僕)에서는 앞을 여성, 뒤를 남성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 성(性)에 따른 분류는 다소 헛갈린다.

그런 이를 일컫는 단어는 풍부한 편이다. 예인(隸人), 예복(隸僕), 하례(下隷), 예어(隸御), 천역(賤役) 등이 있다. 장획(臧獲)이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남자 종과 여성 하인을 일컫는 단어라는 설명이 있다. 여대(輿儓)라는 말도 나온다. 예전 사회에서 신분계급 가운데 낮은 쪽에 속하는 사람, 나중에는 결국 종이나 노비와 동의어로 발전한 말이다.

이들을 부린 사람들이 문제다. 사람을 가두고 묶어 제 심부름이나 잡일을 시키는 데 이용한 이들이 사실은 악습의 본체요 뿌리다. 그럼에도 대중의 언어 취향은 노비들의 습성을 날카롭게 헐뜯는다. 노예와 같은 행위를 비꼬는 말들이다.

우선 노안비슬(奴顔婢膝)이라는 성어 표현이 있다. 노비의 얼굴에 무릎이다. 주인에게 잘 보이려 짓는 비굴한 표정, 먼저 슬슬 바닥에 기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아첨하면서 빌붙는 사람의 행위를 표현한 말이다. 노재(奴才)는 하인이나 지니는 재주를 일컫는 단어다. 보통은 임금 앞에서 신하가 자신을 낮춰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을 이끈 이른바 ‘친박’이 눈총을 받는 요즘이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완고하고 고루했던 신분제가 사라졌음에도 대통령의 노복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이다. 대통령 위세에 올라타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아주 나쁜 머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책임을 통감할 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들은 충복(忠僕)이나 충노(忠奴)로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사회보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충견(忠犬)이나 주구(走狗)로 말이다. 앞으로의 제 자리까지 보전하려는 속셈을 지닌 영리한 동물일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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