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15 14:39

(3) 동부전선에서-3

> 중서부 전선에서 중공군 동태는 활발하지 않았다. 서울 재점령을 목표로 해서 벌였던 공세가 곳곳에서 꺾였기 때문이다. 가평에서는 캐나다 군대 등이 분전을 펼쳤다. 경기 북부 지평리에서는 미군 1개 연대가 중공군 몇 개 사단을 상대로 치열한 방어전을 펼쳐 중공군의 기세는 차츰 바닥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가평천을 넘어 이동하는 캐나다 군대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수적으로는 열세에 있었으나 각 유엔군 예하의 부대들은 맡은 전선을 충실히 지켰고, 때로는 중공군을 압박하며 북상했다.

 

> ‘플라잉 박스’라는 별칭을 얻었던 미군 C-119 수송기들이 전선으로 활발하게 물자를 실어 나르는 장면이다. 미군은 현대전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운용했다. 이 점은 중공군과 큰 대조를 이뤘다. 제 때에 맞춰, 제 장소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보급력에서 중공군은 미군의 수준을 결코 따라오지 못했다. 전선을 지탱하는 바닥의 힘에서 미군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중공군은 그런 객관적 힘에서 드러나고 있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군의 막강한 지역을 피해 취약한 곳을 선택해 공격을 펼치려고 움직였다.

 

> 1951년 춘계 공세에 나서는 중공군을 북한 주민들이 환송하고 있는 사진이다. 중공군은 중부에서 공세를 벌이다 유엔군 반격에 밀렸고, 서부에서는 미군의 공격력에 막혔다. 대신 그들은 동부전선을 노리기로 했다. 1951년 춘계 공세 후반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의 공세 선택 지역은 차츰 분명해지고 있었다. 방어력이 약한 한국 군대의 지역을 공략키로 한 것이다. 동부전선 일대는 그에 따라 차차 전운(戰雲)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 바탕 큰 소낙비가 내릴 조짐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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