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15 16:26

마음으로 여긴다 해도 좋다. 머리로 엮는 생각이라 해도 괜찮다. 어쨌든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일컫는 말이 바로 정황(情況)이다. 앞뒤 사정을 이리저리 엮어 실마리가 드러날 때, 그로써 어느 정도의 윤곽이 드러날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앞의 情(정)이라는 글자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忄(심), 땅에서 식물 등이 돋아나는 모습의 生(생), 다른 것을 물들일 수 있는 염료를 가리키는 丹(단)이라는 세 글자 요소의 합성이다. 그에 앞서 먼저 살펴야 하는 글자는 靑(청)이다.

이 글자 풀이는 대개 일치한다. 봄에 돋아나는 것(生)에 땅 밑에서 퍼낸 염료(丹)의 결합이다. 염료 丹(단)은 보통 붉은 색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여러 색깔의 염료다. 봄에 돋아나는 풀이 그 위에 얹혔으니 이 때의 색깔 지칭은 푸름, 파랑 정도다. 그로써 청색(靑色), 청춘(靑春) 등의 나중 단어 조합이 생겼을 테다.

이 靑(청)에 사람 마음을 지칭하는 忄(심)이 붙어 생긴 글자가 情(정)인데, 사람 마음이 지닌 풋풋한 바탕 또는 꾸미지 않은 상태 등을 가리키다가 그로써 다시 감정(感情)의 뜻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자 뒤에 다시 어떤 모습을 표현하는 況(황)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가 정황(情況)이다.

같은 흐름에서 생긴 말은 정보(情報)다. 상황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어떤 단서나 소식이다. 일의 속내를 가리키는 단어는 사정(事情)이다. 일이 품고 있는 실제 모습이다. 진짜인 점을 더 강조하면 실정(實情)이다. 그런 사정이 어느 정도의 몸체를 형성할 때는 정세(情勢)라고 적을 수 있다.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는 청문회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 농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가 궁금해서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을 심문하는 국회의원들이 아주 바쁘다. 그러나 아직 ‘정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짐작한 ‘게이트’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아 답답하다.

‘정황’을 이룰 만한 ‘정보’로 그 ‘실정’을 대강이나마 짐작한 사람들의 궁금함이 확연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심문에 나선 의원들의 분발이 우선 필요하다. 호통과 막연한 다그침은 우선 지켜보기에 불편하다. 정황에 관한 정보를 더 확실하게 모으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증인들 또한 국정에 혼란을 초래한 이 사태에 응분의 책임감으로 청문회에 임해야 한다. 오늘의 혼란을 휙 지나가는 일과성의 사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기대일지 모르지만 궁금함이 하도 깊어 품어보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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