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6.12.18 14:15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어야할 평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방산시장 입구 진입로가 한가한 모습이다.

[뉴스웍스=이상호기자] ‘총체적 난국(難局)’.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서민들 생업현장의 모습이다. 그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올 연말 자영업자들의 삶은 고단하다. 하필이면 하반기에 ‘김영란법 시행에 최순실게이트까지...’. 게다가 중국 관광객 발길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며 한해를 보냈던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위기’는 극에 달했다.

손님 왕래가 끊긴 재래시장 상인들이 점심 값을 아끼기 위해 사발면으로 때우면 인근 식당은 밀린 월세를 걱정해야 한다. 월세가 제때 안들어오는 건물주는 은행이자에 쫓기고 은행은 금리를 올리려 한다. 서민경제 붕괴가 국가경제를 위태롭게하는 시나리오다. 지금 1부는 이미 시장에서 시작됐다.

대형 음식점이나 중고가(中高價)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주고객층 사이에 ‘시범케이스’는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제시하고 있는 ‘상한가격 제한 규정’이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일단 안먹고 안쓰면서 상황변화를 주시해보자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마저 지갑을 닫았다. 서민들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 시장은...‘적자보다 무서운 소비심리 위축 현장’

경기도 고양시에 110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일산시장. 지난 16일 이 곳에서 상인들을 만나봤다. 15년째 브랜드 의류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40대 여성 직원 김모씨는 “올해 12월이 최악인 것 같아요. 겨울이면 외투가 많이 팔려서 신경 안 쓰고 장사했는데 요즘은 50% 세일을 해도 매장 안에 있는 제품은 비싸다고 (소비자들이)안산다”며 “둘이 일하다 이달 들어 점원 한명이 관뒀는데, 일손이 모자라야할 성수기에 점원을 그만두게 한 것은 15년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산시장 입구모습. 저녁시간인데도 한산하다.

과일가게도 마찬가지다. 청과 자판을 운영하는 이모(51)씨는 “단골 아줌마들이 와서는 과일은 안사고 요즘 돈을 못쓴다고 말해요. 나라 망할까봐서...”라며 “나라가 안정돼야 사람들이 돈을 쓰는데...불안하면 안쓰죠. 저같아도 그래요”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도 시장 안쪽은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이 시장에서 5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67)씨는 TV를 보고 있었다. “몇 십만원 팔던 거 5만원도 못 팔고 이러고 앉아있어요. 두 달은 안 됐고 한 달은 넘었고. 작년만 해도 이렇지 않았어요”라며 “장사 안 돼도 시간은 채우자고 상인들끼리 약속을해 이러고 있는데... 성질나서 혼자 소주 한 병 마셨지”라고 말했다.

김씨와 얘기 중 옆집 상인이 끼어들었다. “요즘 나라가 어수선하니까 장사가 안되는데 대통령 때문에 그런 것은 알겠는데, 갑자기 돈 벌던 사람이 못버는것도 아니고 먹을 것을 안먹는 것도 아닐텐데 왜 들 사람이 안오는건지”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올 겨울 시장은 이 상인의 답답함처럼 내년 경기 불안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짓누르고 있었다.

관광객마저 줄어든 ‘광장시장’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서민들의 먹거리 시장이면서 평소같으면 중국‧일본 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없었다. 그러나 올 연말은 한가한 모습이다.

예년같으면 관광객로 발디딜 틈이 없었던 광장시장 야식코너. 평일 저녁 7시가 넘은시각에도 한가한 모습이다.

“관광객들도 많이 줄었어. 중국에서 많이 막는다며. 예전에 관광버스 두 대 오던 게 한 대로 줄었어. 작년 이맘때는 장사가 잘 됐는데... 작년에 국수를 두 판 했으면 지금은 한 판이야. 주말에도 잘 안 돼요. 점심시간에도 예전 같지 않고...” 광장시장에서 국수와 마약김밥을 파는 한 상인은 이 같이 말하며 “요즘 TV에는 딴것에 정신팔려 중국 관광객들 줄어든 것이 안나오는데 우리는 올 줄알고 준비해 놓은게 안팔리면 하루하루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시장에 중국하고 관계가 틀어져 관광객 발길이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며 “중국이 관광객 안보내면 우리 정부가 내놓을 대책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김영란법’... 재래시장이라고 예외 아니었다

서울 동대문 방산시장에서 선물포장용박스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설모(46)씨는 “기업들이 선물을 안하니 박스 주문도 안들어온다”며 “예전같으면 지금 설날 선물용 박스주문이 밀려들어와야 할때인데 올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직원 해고는 다반사다. 방산시장에서 박스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공장들마다 평소 10여명 내외하던 직원수는 현재 평균 한두명으로 줄었다.

박스 공장 인근 판촉물 판매 상인들도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한 판촉물 운영 상인은 “경기가 안좋을 때 수건이나 볼펜, 머그컵 등 저가 판촉물 수요가 증가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며 “김영란법이 일이만원짜리 상품은 주고 받아도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아예 안주고 안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우리 사회에 큰 도둑을 잡자고 만든 김영란법이 애꿎은 서민만 죽이는 법이란 걸 정치권에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얘기가 나오자 상인들 목소리가 커졌다. 취재를 지켜보던 한 상인은 “우리는 정치 얘기 안 해요. 텔레비전 보다가도 짜증나니까 채널 돌려버리고. 정치하시는 분들 부정부패만 줄여도 그게 엄청 큰 거예요. 나랏돈 해먹어도 괜찮다는 관념을 가지고 하거든요. 다들 뭐라고 해요? 옛날부터 통상적으로 했던 거라고 그러잖아요. 외국은 돈 조금만 받아도 그만두잖아요. 걔네들은 칼같이 지킨다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전통시장 상인들은 현재 정국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나라의 혼란이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을 지켜줘야할 박근혜 정부가 서민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 모습이다.

최순실 한파 속에서 발가벗겨진 대한민국, 결국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건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