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소운기자
  • 입력 2016.12.20 14:50

불황·김영란법·최순실사태 3중고에 AI까지 덮쳐 ‘비상’

[뉴스웍스=이소운기자] “작년 같으면 연말이 되면서 여기 자리가 다 차고 예약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모임 예약도 별로 없고 저녁 시간에 빈자리도 꽤 많아요. 손님이 너무 없으니까 사장님 얼굴 보기가 민망해요.” 

19일 찾은 서울 을지로의 한 대형 소고기 식당 종업원이 한 얘기다. 그는 최근 몇 달새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자 일자리를 잃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IT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한 번화가 골목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매년 연말 무렵이면 쏟아져나온 송년회 인파로 붐벼댔지만 올해는 썰렁할 정도다. 한식을 주로 판매하는 한 식당 주인은 “매출이 많이 떨어져 무한리필로 승부를 보려고 시도했는데 전혀 먹히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기 불황,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이어 ‘최순실 게이트’까지 덮쳐 연말 경기가 실종되면서 동네 식당들이 최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집에서 저렴하게 술자리를 갖는 ‘집술’이 트렌드가 되고, 김영란법으로 몸을 사리는 이들이 많아 식사 모임이 줄어들고, 어수선한 정국에 직장이나 친구들 송년회 모임도 거의 없어 연말 경기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관공서 근처에 자리잡고 있던 한정식집 등의 경우 업종을 바꾸거나 폐업을 하는 경우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가격대가 높은 편인 소고기 식당, 한정식집, 일식집 등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가세하면서 닭·오리고기 식당까지 비상이 걸렸다.

‘퇴직하면 식당이나 하지’라며 만만하게 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 식당업은 ‘창업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폐업한 자영업자 4명 중 1명은 식당 주인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해 외식 수요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는데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이고 취업이 어려운 2030세대까지 너도나도 진입장벽이 낮은 식당 창업에 가세하면서 식당 공급은 늘어 포화상태가 된 탓이다.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말 537만4000명에서 올 10월 569만5000명으로 32만명 이상 늘었다. 그런데 지난 9월 일반 음식점업의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85.2로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부도 위험이 불거졌던 2011년 9월(83.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찍었다.

그나마 이 수치는 김영란법이 본격 발효되기 전 조사된 것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11월 23~28일 전국 외식업체 47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외식업 매출 영향' 조사 결과 외식업체 운영자의 63.5%가 청탁금지법으로 매출이 줄었으며 평균 매출감소율은 33.2%라고 응답했다. 특히 3만원 이상 중·고가 식당 운영자는 80% 이상이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매출감소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휴·폐업 또는 업종전환을 고려하는 업체도 26.9%나 됐다.

청탁금지법과 최순실게이트의 여파가 깊어질수록 소비는 더 꽁꽁 얼어붙고 문을 닫는 식당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서울 영등포구 한 ‘먹자골목’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동네 인구가 2만명 정도인데 한식당만 500여개다. 인건비라도 아껴보려고 종업원도 없이 일하지만 월 수입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곳이 수두룩하다”며 “월 임대료는 200만원 정도 하는데 임대료는 가게가 바뀔 때마다 오르니 누구도 버텨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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