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20 16:35

이 말 함부로 쓸 일은 아니다. 공포를 담은 말이기 때문이다. 왜 무서울까. 기존에 있던 것을 모두 없애고 부정함으로써 닥치는 결과가 매우 참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革命)은 그래서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단어다. 뒤집어엎을 만한 일은 따라서 우리 삶속에서 드물게 발생한다.

사람 사는 사회는 늘 새로움을 좇는다. 개선(改善), 개량(改良), 개조(改造), 혁신(革新), 쇄신(刷新) 등은 그래서 늘 필요하다. 어떤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적절하게 손을 대 고치는 일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그런 적정량의 고침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사회 저변의 불만이 지극히 높이 쌓였을 때 등장하는 말이 혁명이다.

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를 보자. 革(혁)은 우선 새김이 ‘가죽’이다. 동물이 두르고 있는 표피를 가리킨다. 글자 초기 형태는 두 손으로 어떤 틀에 대고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행동으로 나온다. 이로써 우선은 동물의 가죽이라는 새김을 얻었고, 이어 그런 행위를 가리켰다.

적정량의 고침이라는 맥락에서 앞에 여러 단어를 소개했지만 그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혁신(革新)이다. 이는 동물의 가죽을 직접 벗겨 털과 피, 기타 잡티를 모두 거른 뒤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가죽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뜻에서 나왔다.

그런 동작을 革(혁), 그 결과를 新(신)으로 적었다는 얘기다. 이는 순우리말 ‘무두질’에 해당한다. 동물의 가죽은 이런 무두질을 거쳐 전혀 새로운 가죽으로 탈바꿈한다. 그렇듯 전혀 새롭게 변하는 일이 바로 혁신(革新)이다. 개선이나 개량, 개조 등에 비해 의미가 강하다.

전혀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일 중의 으뜸이 바로 혁명(革命)이다.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대상이 바로 命(명)이다. 이 글자는 ‘목숨’ ‘천명(天命)'을 일컫는다. 동양 한자세계에서는 왕조의 임금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명을 전혀 새롭게 바꾼다는 정치적인 용어로 먼저 등장한다.

서양에서 천체(天體)의 큰 순환을 일컬었던 라틴어 revolutio를 '정치적 대 전환'이라는 맥락으로 revolution이라는 단어로 사용했다가 동양으로 그 말이 전이하면서 결국 같은 흐름의 혁명이라는 한자 단어로 옮겨 왔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중차대한 전환이라는 점에서 둘의 새김은 차이가 없다.

따라서 ‘혁명’이라고 적으면 왕조의 운명, 나아가 세상을 뒤집는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중대한 용어다. 군사 정변(政變), 즉 쿠데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고 있던 사회의 정치체제 등 전반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이 혁명이라는 단어가 화제다. 차기 야당 대권주자로 부상한 사람이 사용해서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절차에 올라 헌법재판소의 심리 과정에 들어 있는 현직 대통령의 문제를 두고 이 단어를 썼다. “탄핵절차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혁명 밖에 없다”는 취지다.

그는 이 말이 논란으로 번지자 “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는 말은 가능하고 왜 이 말은 문제로 삼느냐”는 내용의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촛불’과 ‘시민’에 따르는 ‘혁명’은 레토릭, 수식에 불과하다. 촛불과 시민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궈낸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가리키는 수사(修辭)적 용법이다.

그러나 직접 발언한 “~면 혁명 밖에 없다”는 말은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뒤 다음 행동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문맥과 구체적 쓰임이 전혀 다른 경우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법의 테두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으로 불거진 오늘의 사태는 침착하게 풀어야 한다. 대권을 지향하는 정치인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부정하는 단어를 함부로 쓸 수 없다. 레토릭 차원의 말뜻과 제 발언이 몰고 올 심각한 현실의 요소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정치인, 특히 대권을 향하는 후보자로서의 자격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무지(無知)가 자랑은 결코 아니다. 작금의 우리 정치적 사태가 그에 기인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점을 여러 사람들이 깨닫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말을 고르지 못하는 행위도 결국 무지에 따른 상황 인지(認知) 능력 부족에서 나온다. 여든 야든 그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이 사회의 정말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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