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7.02.22 12:30

[3부 새로운 경제 -관행부터 없애 버려야]

[뉴스웍스=이상호기자] ‘존경받는 기업’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이 우문으로 들릴 정도로 요즘 국민들의 반(反)대기업 정서가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국회 '최순실게이트'관련 청문회에서 여야의원 가릴것 없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를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에게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수출역군, 산업역군’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통용됐다. 가난했던 국가를 일으켜 세우는 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권력형 비리 사건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그동안 쌓였던 좋은 이미지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일궈낸 성과에 대한 감동이 반감된 건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매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KOREA’s Most Admired Companies, KMAC) 순위가 나온다. '삼성전자‧유한양행‧유한킴벌리‧현대자동차‧카카오‧아모레퍼시픽‧LG전자‧SK텔레콤‧포스코‧인천국제항공공사'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선정한 ‘2016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상위 10위까지의 기업들이다. 산업계 간부진, 증권사 애널리스트, 일반소비자가 참여해 ‘혁신능력’, ‘주주가치’, ‘직원가치’, ‘고객가치’, ‘사회가치’, ‘이미지가치’ 등 6개의요소를 평가하고 점수를 합산해 순위가 결정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의미하는 ‘사회가치’ 평가가 다른 요소들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는 것이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표현대로 ‘아직까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을 위한 '경제민주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조사한 존경받는 기업에 대해선 논쟁이 가능하다. 다만 정상적인 경영환경에서 이뤄낸 성과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이 논쟁도 의미가 있다.

지난 6일 삼성‧현대‧SK‧롯데‧LG‧GS‧한화‧한진‧CJ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오너들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했다. 해당 대기업들은 대통령과 그 지인인 최순실이 사익을 도모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기업들의 법적 책임 여하는 특검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 이 모습이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언론들은 1988년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를 떠올렸다. 1988년 정주영 회장은 ‘시류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며 ‘(바른 말을 할)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6년 청문회에선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정말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30여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 지금도 벌어질 수 있다는 시장 불신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대기업들이 경제민주화를 요구해야 할 당위가 생긴다. 정부와 기업 사이에 불투명한 거래가 물밑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다양한 경제 주체 사이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 사측과 노측의 대화, 기업의 기부활동 등, 무엇을 하든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 ‘사회적 이중계약서’를 쓴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비공식적으로 체결한 계약서는 이제 찢어버릴 때가 됐다.

◆ 감동주면 ...'존경' 따라온다

2010년대 초 워렌 버핏의 주장으로 시작된 ‘버핏세’ 논쟁이 뜨거웠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실효세율이 억만장자인 자신보다 더 높다며 부자들의 실효세율 하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버핏의 태도다. 자본가로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시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테드 터너 CNN 설립자 등 미국 재계의 전설들뿐 아니라 마이클 스타인하트, 톰 스타이어 등 투자계의 대부들도 버핏의 뜻에 동참했다.

기업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 행보를 보여야 기업도 조직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일종의 생존전략인 셈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애플은 테러범이 소지한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해제해달라는 FBI의 요청을 거절했다. ‘서민의 사생활과 안전을 정부가 침해해도 된다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고객에게 드리는 메시지’에서 “미국 정부가 애플이 고객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에 없는 조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했으나 이 같은 명령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보고서도 역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제는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정상으로 여겨지지 않으니 기업의 존재 목적 자체를 사회적 책임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한단계 발전한 ‘의식있는 사회적 책임’(Conscious Social Responsibility)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쉽게 바꿔 말하면 개별 경제 주체들에게 ‘개념 있는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태도를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의 한가운데에서 곤혹스러운 기업들이 적지 않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인 대기업 오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지금이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 적기다. 1980년대로 돌아간 경영환경에서 탈피하고 기업의 문화를 새로 세워야 할 때다. 과거 정주영 회장이 내지 못했다던 용기를 지금이라도 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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