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소운기자
  • 입력 2016.12.21 15:47

[뉴스웍스=이소운기자] 나는 요즘 내 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니 피눈물이 납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내년이 '붉은닭띠 해'라며 일찌감치 나는 주목받았습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육십간지 중 34번째, 십이간지 ‘정(丁)은 적이므로 붉은색으로, 붉은 닭의 해로 불립니다. 벼슬은 문(文), 발톱은 무(武)를 상징하며 ‘덕을 갖춘 새’로 표현돼 왔습니다.

기업들마다 신년 마케팅에 나를 쓰기 위해 달력에 나를 그려넣고 조폐공사에서 만든 금주화에도, 접시에도 닭 모양이 넘쳐났습니다. 서울시 청사 앞에는 닭 모양 조각이 자리잡았습니다.

본디 나는 새벽을 알리는 울음소리로 어둠 속에서 도래할 빛의 출현을 알리고 만물을 깨우는 상징적인 동물로 일컬어졌습니다. 내 울음소리는 귀신을 쫓는 기능이 있다고 해 예로부터 새해에 집집마다 액을 쫓고 복을 빌면서 대문이나 벽장에 내 그림을 붙였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조인 김알지(金閼智) 탄생설화에 내가 나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로마군에게 잡혔을 때 방황하던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성경 이야기가 있고 교회당 지붕과 첨탑에 닭을 장식하고 부활절에 예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달걀을 돌립니다. 불교에서는 닭 우는 시간에 항시 참선한다는 새벽수련의 의미로 ‘계명정진(鷄鳴精進)’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뿐입니까. 늘 사람의 옆에서 가축으로 길러지며 인간의 몸을 보하는데 이한몸 바쳐온 운명입니다. 인간에게 도축되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많이 희생되는 동물이 닭입니다. 한국에서만 연간 10억마리 이상 도축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달만에 갑자기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입니다.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덮치면서 한달여만에 1000만마리가 넘는 동족들이 차가운 흙 속에 묻혔습니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수치로는 AI 발생 35일만에 전국 8개 시·도 및 29개 시·군에서 닭 1637만5000 마리, 오리 193만8000 마리, 메추리 등 기타 종류 89만7000 마리 등 가금류 2084만9000마리(전체의 12.6%)가 살처분됐다고 합니다.

특히 산란용 닭의 20.8%가 도살 처분됐고 산란종계(번식용 닭) 역시 40% 가까이 도살됐답니다. 계란 운반차량이 농가를 드나들면서 AI 전파를 확산시킨다면서 전국 AI 발생농가 3㎞ 방역대 내에서 생산된 계란 반출도 일주일간 금지시켰습니다. 씨가 마른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걸까요.

치킨집 사장님들이 배달 주문 전화가 줄어들어 울상을 짓고 있고 대형마트나 제빵업계 종사자들은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앞두고 계란을 확보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우성이랍니다. 죽은 닭들을 축사에서 꺼내 매몰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힘들다고 하네요. 우리 때문에 사람들도 같이 힘들어진다니 더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제발 예방도 잘 하고 관리도 잘 해서 더 이상 친구들도, 저도 ‘비명횡사’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닭이 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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