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6.12.22 14:35

[뉴스웍스=김동우기자] 2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이후 8주만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지지율 1위로 올라서며 화제의 이름으로 떠올랐다. 이 조사에서 반 총장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6%포인트 오른 23.1%를 기록해 22.2%를 기록한 문 전 대표를 0.9%포인트 앞섰다.

리얼미터측은 “반 총장의 ‘대통령 리더십 비판’ 발언과 사실상의 대권출마 선언 관련 보도가 증가하면서 2주째 상승했다”며 “TK와 수도권, 충청권, 20·30대와 50대, 정의당과 국민의당 지지층, 진보층과 중도층에서 주로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반 총장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마지막 간담회에서 10년의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을 앞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하면서 “조국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불사르겠다”며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반 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2년 여름에 적십자가 주최한 청소년 국제연구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 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을 방문했다. 이 때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고 이 만남이 그가 외교관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했고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참여정부에서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재직중이던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납치돼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찬성 등 한미동맹을 중요시하는 성향을 보였다.

그는 200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대륙별 쿼터제에 의해 아시아 대륙에서 사무총장을 배출할 차례였지만 다른 아시아 후보자들이 모두 결격사유가 있어 유력후보로 부상하게 된다.

<사진제공=유엔>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려했던 프랑스에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득했으며, 당시 고(故)노무현 대통령은 유럽과 아프리카 순방에 그를 동행시키면서 반기문 UN사무총장 만들기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7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이어 2011년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한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파리 기후협정’으로 유명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한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남수단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분쟁에 대해 평화유지군 투입했으며 2014년에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보건유지군 ‘UNMEER’을 창설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예맨 내전, 우간다 문제, 핵 확산, 유럽 난민사태 해결 등에 대해 ‘우려’만 하고 개입하지 않아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으로부터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 ‘어디에도 없는 남자(Nowhere Man)’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는다.

한국에서도 지나친 친미성향과 2015년 한국정부의 위안부 졸속합의에 대해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 자위대의 무기 사용을 확대한 출동경호 임무에 대해 감사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밖에도 비밀문서를 운송하는 외교행낭을 이용해 김종필에게 사적인 편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들이 SK텔레콤 뉴욕 사무소에 특별채용으로 취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열린 관훈클럽에서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제가 더 생각해보겠다”며 대권 도전에 대한 의사를 내비쳤고 ‘최순실 게이트’가 발발한 후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자주 우려를 표명해왔다.

오는 31일 UN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8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정가에서는 반 총장이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세력과 손을 잡을지는 아직 미정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