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22 16:26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외곽 출입문 모습이다. 관아(官衙)라는 말은 전쟁터 군대의 영문에서 비롯한 단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무시무시한 집단이다. 그래서 군대의 깃발에는 사나운 맹수, 그리고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 등을 그렸다. 그래서 보통 군대의 깃발을 일컫는 단어가 아기牙旗다. 그런 깃발을 올려 세우는 일이 바로 건아建牙다. 그런 깃발이 세워져 있는 곳이 곧 아문牙門인데, 군대의 정문을 일컫다가 나중에는 그런 흉내를 낸 일반 관공서의 대문도 가리켰다. 그러면서 牙(아)라는 글자가 衙(아)로 변신해 나중의 일반 관공서인 아문衙門으로도 이어졌다. 따라서 관공서의 일반 명칭인 官衙(관아)도 官牙(관아)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건제建制라는 단어는 군대 갔다 온 사람이면 다 안다. 정부기관이나 군대의 조직과 행정 구획 등을 가리키는 단어다. 건원建元이라는 단어는 역사서에서 많이 등장한다. 황제나 군왕 등이 즉위한 뒤에 자신의 치세治世에 해당하는 기간을 획정하면서 그에 이름을 붙이는 연호年號를 세우는 일이다. 원년(元)을 세운다(建)는 엮음이다. 황제 등의 통치행위에서 시작을 장식하는 일이니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건령建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 쓰임에는 거의 없고, 중국에서도 일반인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새김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파죽지세破竹之勢의 성어를 우선 보자. 대나무에 칼집을 내고 쭉 내리면 그게 바로 대나무(竹)를 쪼개는(破) 기세(勢)다. 거침이 없이, 상대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국으로 공격을 벌이는 일이다.

건령建瓴도 마찬가지다. 뒤의 瓴(령)은 토기, 즉 질그릇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물동이’ 정도로 풀어도 무방하다. 그런 그릇에 물을 담아 일으켜 거꾸로 세우면(建) 어찌 될까. 그를 성어로도 표시한 게 있다. 고옥건령高屋建瓴이다. 높은 건물(高屋)에서 물그릇을 거꾸로 매단(建瓴) 형국이다. 물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역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그런 상황을 말한다. 함부로 막을 수 없는 기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건언建言, 건백建白, 건명建明. 이 세 단어는 거의 같은 뜻이다. 관료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가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 제 의견을 내는 일, 즉 건의建議하는 행위다. 말(言)로써, 솔직히(白), 분명히(明) 자신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당위當爲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렇듯 국사 논의에 참여하는 중요 관료들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분명하고 담백하게 밝혀야 한다. 지금 우리 국가 공무원들의 소신 있게 제 뜻을 펴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원래는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이 역의 예전 이름인 화양華陽도 잠시 살펴보자. 1호선을 여행할 때 한 번 언급했던 이야기다. 춘추시대가 펼쳐지기 전, 주周나라에는 무왕武王이 있었다. 원래는 조그만 나라다. 그 주나라는 은殷나라를 섬겼다. 그 은나라 마지막 왕이 주왕紂王이다.

이 주왕紂王은 동양 고대의 역사를 언급할 때 꽤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폭군暴君의 대명사로 말이다. 실제 후대의 역사가들이 말하는 내용처럼 그가 정말 포악했는지는 의문이다. 역사는 늘 이긴 자의 뜻을 담아 서술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주나라가 내건 명분, 그에 따라 포장했을 법한 여러 가지 폭정暴政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폭군하면 먼저 떠오르는 수준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까.

어쨌거나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없앴다. 그 뒤 길고 길었던 전쟁의 역사를 마치기 위해서 주나라 무왕이 전쟁터에 끌고 다녔던 군마軍馬를 수도 인근에 있던 화산華山 남쪽에 풀어 길렀다고 한다. 역시 전쟁터를 함께 누볐던 소들도 인근의 숲에 풀어 줬다고 한다. 그러나 소보다는 말이 옛 시절의 전쟁을 더욱 높이 상징했다. 고대의 전쟁에서 말은 곧 전략적 무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풀어 줬던 화산華山의 남쪽이 매우 유명한 뜻을 얻는다. Peace-, 곧 ‘평화’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지하철 1호선의 서울역을 지나올 때 이는 설명한 적이 있는 내용이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산의 남쪽, 그리고 강의 북쪽을 山南水北(산남수북)이라고 하면서 이를 볕이 잘 들어 따뜻하며 건조하다는 의미의 陽(양)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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