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2.26 10:13

미소가 유난히 그윽한 사람이 있다. 똑같은 얼굴 근육을 가지고 똑같이 웃는데 왜 그럴까. “푸하” 터트리는 것도 아니고 “깔깔깔” 강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활짝 웃으면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다. 뭔가 있긴 한데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매력이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미소천사'라고 하며 함께 웃기를 좋아한다.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람과 있으면 미소의 공기가 전달된다. 미소는 전염 같다. 미소는 미소를 끌어당긴다.

여기 '미소천사'가 가득한 그림이 있다. 막스 뵘(Max Bohm)의 그림에 반한 것은 인물의 얼굴 때문이다. 날카롭다기보다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발그레하고 통통한 볼, 웃느라 그늘져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는 반달 모양의 눈, 양 입가에 고여 있는 웃음의 우물은 화면에 미소를 가득 채우고, 그림 밖의 공간을 묘한 공기로 가득 채운다.

Max Bohm <Springtime in France> 1922-23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막스 뵘 (Max Bohm, 1868~1923)에 대한 정보는 아쉽게도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라스트 네임을 들었을 때 카라얀의 라이벌이었던 지휘자 칼 뵘(Karl Bohm, 1894~1981)이 떠올랐다. 막스 뵘도 그와 비슷하게 오스트리아와 독일 계열의 혈통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당대의 미국 화가들이 그랬듯이 프랑스로 건너갔다. 아카데미 줄리앙(the Académie Julian)에서 그림을 배웠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다. 20대 후반이 지나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곳 역시 유럽이었다. 뵘은 유럽에서 화가로서 잘 정착한 것 같다. 1898년 파리 살롱에서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낭만주의적이고 영웅적으로 표현된 어부의 그림이었다. 1911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런던의 미술학교에서 교사로서도 열심히 일했다. 1920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의 절정기는 오래가지 못 했다. 그는 3년 후 메사추세스의 프로방스타운에서 인생을 마무리 지었다.

연도로 보아 이 그림은 막스 뵘의 생의 말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본 사람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얼마나 여러 번의 붓질로 그려졌는지. 이렇게 성실한 붓 터치를 쓰는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을지는 약간 추측할 수 있다. 두터운 붓 터치가 가득한 화면에서는 얇은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풍성하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의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그때의 봄날을 회상한 것일까? 어머니의 무릎에는 아주 작은 아이가 누워 있고, 곁에 또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갓난아기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고, 어머니는 아기의 왼손을 꼭 붙잡고 있다. 아기의 발치에는 조금 더 큰 아이가 양손에 꽃을 꼭 쥐고 아기의 얼굴에 눈을 맞춘다. 어머니의 왼쪽 어깨에 기댄 아이는 인형을 품에 끌어안고 아기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얼마나 눈부신 미소가 가득한지, 화면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그림은 더 환해지고 관람자는 더욱 눈부시다.

나는 막스 뵘이 미소에 집착한 화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생의 말년에 그린 ‘프랑스에서의 봄날 (Springtime in France)’은 그가 보았던 미소들을 모두 모아 그려낸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미소는 미소를 부른다. 막스 뵘은 많이 미소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미소 짓는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인생에는 미소 지을 일이 많았던 것 아닐까? 미소를 짓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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