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26 10:33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앞 골목 풍경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드는 서울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그 반대인 산의 북쪽과 강의 남쪽이 볕이 덜 들어 어둡고 차가우며 습기가 많은 陰(음)으로 지칭했다. 산의 남쪽에 볕이 잘 드는 일은 지구 북반구(北半球)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에 비해 강의 흐름은 중국의 지리적 특성이 돋보인다. 중국의 큰 하천은 대개 서북에서 동남으로 흐른다.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이 동남쪽으로 흘러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을 기준으로 할 때 남쪽이 그래서 陰(음)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렇게 강을 기준으로 남쪽을 陰(음)이라고 하는 지칭은 우리 한반도의 지리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의 큰 하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중국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이 陽(양)이다. 따라서 주나라 무왕이 전략 무기에 해당했던 말을 풀어 놓은 華山(화산)의 남쪽은 자연스레 華陽(화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말은 곧 그런 스토리를 배경으로 ‘전쟁을 모두 끝내고 평화를 맞는 일’ 또는 ‘평화를 위한 조치’, 나아가 ‘평화’라는 뜻의 성어로 정착했다. 이는 우선 <상서尙書>에 등장하는 “말을 화산 남쪽에 풀고, 소는 도림의 들판에 놓아준다(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는 문장으로 전해졌다가, 나중에는 散馬休牛(산마휴우), 馬放南山(마방남산) 등의 성어로 정착했다. 앞은 ‘말을 풀고 소를 쉬도록 한다’, 뒤는 ‘말을 남산에 풀어놓다’의 뜻이다.

비록 휴전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이 땅에도 이미 전쟁의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은 지 벌써 60여 년이 넘었다. 전쟁터를 휘돌아 다녔던 말과 소는 이미 존재조차 잊혀졌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절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 엄연한 휴전의 상태에 불과하다. 잠시 전쟁을 멈췄을 뿐 끝내지는 않은 상태라는 얘기다.

전쟁을 잊으면 전쟁을 부를 수 있다. 비록 겉모습은 평화의 시기라 하더라도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움직임은 여전할 뿐이다. 60여 년 전 이 땅을 피와 눈물로 얼룩지게 했던 전쟁을 송두리째 잊어서는 곤란하다. 잊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전쟁의 가능성에도 늘 대비해야 한다. 창을 머리맡에 두고 아침이면 행군하는 전쟁의 시절은 아닐지라도 항상 그 가능성에 대비하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華陽(화양)이라는 단어는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 참혹함을 반복하지 않고, 소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대비하고 갖춰야 한다. 그래서 모든 전쟁의 가능성이 소멸했을 때 우리는 제가 지녔던 ‘말’과 ‘소’를 산의 볕 바른 곳에 풀어 진정한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그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깃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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