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2.26 11:27

먹고 사는 문제 해결못한 북한...

며칠 전 하나원을 나온 지 얼마안되는 탈북자 한 사람을 만났다. 2015년 탈북했으나 올해 한국으로 입국한 분이었다. 그는 청진에서 살다가 탈북 했다고 한다. 북한의 근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단마디로 “다 됐다”고 잘라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 됐는지를 묻는 나에게 그는 “자본주의가 다 됐다고 말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북한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매우 낯설었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었지만 그 인민공화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단된 남한을 부르는 공식명칭은 “남조선”이다. 남조선이라는 이름은 공화국의 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언젠가는 미국 제국주의와 괴뢰들을 쳐부수고 우리가 수복해야 할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남조선이 수복해야 할 혁명의 땅이 아니라 모두가 동경하는 나라가 돼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수근대는 것이 '남조선은 세계 반도체 생산 1등국가라는 것', '자동차를 자기 힘과 기술로 만드는 5개 국가 중에 하나라는 것', '세계에서 핸드폰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라디오가 확산돼 밤마다 숨어서 한국의 야간 뉴스채널을 청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남한사회의 발전상을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배급제가 작동되지 않고 사람들이 국가의 공급체계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으면서 확산되는 자본주의 문화와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은 그분의 말을 빌리면 “막을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어떤 루트를 통해 들어 왔는지 3-4년 전부터는 도시와 지방의 시장마다에 남한산 겨울 패딩이 그 브랜드를 제거하지도 않은 채 공공연히 팔리고 있으며 북한사회에서 부의 상징을 나타내는 제품이 됐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 전 까지만해도 개성공단의 초코파이와 한국 드라마를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위한 기제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제는 그런 것을 넘어 USB저장장치, 전기밥솥, 한국화장품, 구두, 사기와 철기로 만든 각종 주방용기와 그릇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한다.

또 이런 것들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고 몇 년전까지 비밀리에 거래가 되는 것들이었다면 지금은 시장의 좌판대에 공식적으로 등장해 팔리고 있다고 하니 북한사회의 변화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내가 북한을 살던 시절(2004년이전)만 해도 남한산 제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른 외부세계에서 유입된 제품, 영어나 기타 다른 국가의 언어로 된 상표는 그 땅에서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초반까지만해도 필자의 친구 일부는 영어 브랜드가 붙어있는 옷을 입고 다니다가 안전원(경찰)에게 단속돼 옷을 가위로 찢기거나 회수당한 적이 비일비재했다. 그만큼 불과 10여년전 북한은 외부세계의 문물을 철저히 금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적힌 쌀자루가 공공연히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오고간다는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는 이런것을 통제하거나 수거하는 통제기관의 기능자체가 마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 중앙 집중적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과 자립경제의 내부적 한계와 모순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장과 기업소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대부분 멈춘지 오래됐지만 시장만큼은 북한역사에서 그 어느 때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활력을 띄고 있다. 생산이 안되는 데 시장에 활력이 넘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를 통해 북한의 사회 통제 시스템이 최근 급격히 느슨해졌거나 무너졌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생산하지 않아도 시장에 물건이 넘치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암거래가 횡행한다는 반증이고 이를 유통하는 사람들과 안전원간 청탁이나 뇌물이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치안상태가 점차 무너지면서 인민들의 시장주의에 대한 동화가 점차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배급제에 대한 불평을 강화시켜 정권유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점차 느슨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북한식 발전전략의 특징이었던 중공업 우선노선의 불균형과 국방공업에의 지나친 투자, 생산과 기술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치, 사상적인 것의 자극으로 문제를 타개하려는 전략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외개방을 제한하고 오직 우리 식대로라는 지나친 자립노선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북한이 중국의 경제성장을통해 내부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시장주의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가정하고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라는 것은 경제‧사회 부문의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평안남도 안주시 장마당 모습. 북한에서 장마당은 암시장 성격이 강하다. 최근 들어 장마당에서 생필품은물론 휴대폰까지 거래되는 등 활성화되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제공=동국대DMZ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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