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12.26 11:00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김동주(왼쪽) 전 의원이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캡쳐>

[뉴스웍스=김벼리기자] 26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서울구치소에서 청문회를 열었으나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은 이번에도 불출석했다. 이에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수감동 현장에 직접 방문해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김동주’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그와의 통화내용을 인용, 지난 ‘5공 청문회’ 당시 국회결의로 열쇠를 따고 들어가 장영자 이철희를 직접 만나 조사를 한 사실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국회의원 3선 경력의 김동주 전 의원은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3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기능공으로 입사한다. 1973년에는 부산시 승공회(勝共會; 반공단체의 일종)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금성사에서 나와 대동철강을 경영하기 시작한다. 그가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78년. 당시 대동철강 회장이었던 김 전 의원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그러나 결과는 10% 득표울. 3위에 그친 그는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3년 뒤 1981년 그는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또 떨어진다. 그러던 그가 처음 국회에 입성한 것은 1985년. 신한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이재우 민주정의당 후보와 함께 제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 통일민주당에 입당한 뒤 김 전 의원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연이어 출마, 당선된다. 이때 그는 ‘제5공화국 조사특별위원회’ 산하 ‘정치권력형비리조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다. 그리고 앞서 하태경 의원이 언급한 ‘5공 청문회’와, 김 전 의원의 전성기가 이때 펼쳐진다.

청문회에서 김 전의원은 걸걸한 목청과 특유의 제스처로 증인들을 몰아붙인다. 특히 그는 당시 증인으로 나온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날선 대결을 펼쳐 인지도를 높인다. 당시 그는 “야당의원답다”, 시원시원하게 잘한다” 등의 칭찬과 “의원 신분으로서 좀 지나치다“는 식의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청문회 스타’로 등극한다.

실제로 1988년 한 언론사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전 의원은 ‘5공비리 청문회에서 신문을 잘한 국회의원’ 3명 중에 1명으로 선정됐다. 또 다른 한명은 당시 5공비리특별위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후 김 전 의원은 1989년 통일민주당 사무차장에 임명됐으며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주자유당으로 들어가 제1사무부총장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두 번 연속 국회의원 선거에서 탈락의 수모를 겪는다.

민주자유당으로 옮긴 지 1년 정도 지난 그는 1991년 ‘수서 비리’ 사건에 연루, 사법처리된다. 그 영향으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그는 나오연 후보에게 밀린다. 4년 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한 그는 무당파국민연합 후보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신한국당 김기재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그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국회의원직은 1998년 재보궐선거를 통해서였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 뒤로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 출마했으나 각각 한나라당 안경률 후보,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