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재아기자
  • 입력 2016.12.27 15:51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뉴스웍스=이재아기자] “기업은행은 제 인생의 전부였고 은행원의 삶 역시 제겐 천직이었습니다.”

권선주 IBK 기업은행장이 27일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같은 소감을 발표하며 행장으로서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여성 대졸 공채 1기, 여성 최초 지역본부장, 여성 최초 부행장, 여성 최초 은행장 등 권 행장의 이름 앞에는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권 행장의 행보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실추된 여성 리더상과 대비되는 무탈한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권 행장은 1956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상업은행 지점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78년 당시 중소기업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구분없이 진행된 대졸 행원 공채 17기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기업은행 서울 동대문지점에서 창구 업무를 시작으로 38년간 은행업 외길 인생을 걸어온 권 행장은 그간 CS센터장, PB부사업당장,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을 맡은데 이어 2011년 부행장으로 승진해 카드사업본부장, 리스크관리본부장 및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역임했다.

권 행장은 다양한 직책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오다 2013년 12월 30일 기업은행 내두 번째 내부승진으로 제24대 기업은행장 자리에 오르며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깨는 데 성공했다.

권 행장을 대표하는 단어는 ‘마더십(마더+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외유내강형 리더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소통에 능하고 성품이 온화한 여성 행장이라는 권 행장의 특징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가 이뤄온 그간의 성과에 주목하게 한다.

권 행장은 재임한 3년간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 등 악화된 경영환경 속에서 당기순이익 1조원 클럽 진입과 총자산 300조원 돌파를 이끌어냈다. 순익 1조 클럽을 달성한 것이 칭찬을 받는 이유는 은행 본연의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도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013년부터 올해 3분기 말까지 135조원이나 늘었다. 또 지난 8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실적평가에 따르면 주로 중소기업들이 신청하는 기술금융에서도 은행권 전체 1위를 차지했고 세부 평가에서도 모두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 아울러 지난 10월 기준 기업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25조9169억원으로 전체 실적 91조3038억원 가운데 4분의 1을 차지하며 은행권에서 가장 많은 실적을 냈다.

특히 권 행장은 문화콘텐츠 투자에 큰 힘을 실어줬다. 2012년 금융권 최초로 만들어진 문화콘텐츠산업팀을 취임 직후 ‘팀’에서 ‘부’로 격상시켰고, 2014년부터 지난 6월말까지 영화 등 문화콘텐츠에 투자 및 대출을 9584억원 가까이 해주며 해당 분야 활성화에 한몫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같은 투자는 성과로 이어졌다. IBK기업은행이 영화계에서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유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문화 투자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30억원을 투자한 ‘인천상륙작전’뿐 아니라 15억원을 투자한 영화 ‘부산행’도 올해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기업은행은 지난해에도 영화 ‘베테랑’을 통해 투자 금액 대비 244% 수익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물론 임기 내 구설수에 올랐던 적도 있었다. 권 행장의 남편인 이화택씨가 경영하던 회사 윌앤비전의 주식이 권 행장이 취임한 직후 전량 매각 백지 신탁됐다. 그런데 매각한 주식이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20%)과 박종규 전 IBK기업은행 부행장(12%) 등 그의 연세대 동문이 사들여 사전에 합의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또 기업은행이 이화택과 관련된 회사와 지속적으로 아웃소싱 계약을 맺은 점도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련도 있었다. 기업은행은 금융권 성과주의 확산의 시범 케이스가 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에 속도를 냈고 노조와 사전협의 없이 임시 이사회를 열어 도입안을 의결했다. 이에 반발한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6월 사측의 성과연봉제 관련 개별 동의서 강제 징구와 불법 이사회 개최 등을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권 행장을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 행장은 재임 기간 내내 보여 준 '엄마 리더십'으로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하고 은행원 외길 38년을 마무리한 뒤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연인으로 아름답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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