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2.27 16:06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유진룡? 우리 공무원 사회 ‘상명하복’ 문화에 견주어 보자면 나이브한 측면이 있지. 좋게 말하면 강직한 건데... 근데 뭐 조직에서 강직하다고 살아남을 수 있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고교·대학 동창이자, 30여년 공직에서 근무한 후 얼마전 은퇴한 한 지인이 그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다.
기자는 사석에서 유 전 장관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문광부장관직을 내려 놓은 후였다. 눈빛이 맑았고 말에 감정이 섞이지 않았지만 자기 의견 표명에 있어서는 쾌도난마였다. 만 36년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않아 오히려 각 정파마다 자기편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헷갈리게한 공무원. 기자가 그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27일 그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사전 인터뷰에서 “이번 청문회에 나갔으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따귀를 때렸을 것”이라고 말해 또 화제가 됐다. 진행자가 이번 청문회 때 증인으로 채택됐었는데 불출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의 이름 석자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문광부 차관으로 재직 중인 2006년이었다. 참여정부시절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아리랑TV 부사장을 추천했는데 당시 유 차관은 ‘자격미달’이라고 거부했다. 불과 6개월만에 그는 차관직에서 짤렸다. 이후 양 비서관의 “배 째 드리죠‘라는 설화 파문을 낳기도 했는데, 그가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 됐었다.
이 일이 보수정권 들어서 그의 훈장(?)이 됐다. 이명박 정권에선 그를 홍보수석에 임명하려 했으나 그가 고사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직후 첫 문광부장관으로 발탁됐던것도 참여정부에 반발한 믿을만한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다. 그러나 그는 국무회의에서 여러차례 돌출 의견을 피력해 박 대통령에게 찍혔다(?)는 소문이 났다.
그는 세월호 사건당시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서 국무위원 전원사퇴 의견을 냈으나 묻혀버리자, 박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또 같은 발언을 했다. 대통령의 레이저광선같은 시선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장관직을 물러난 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DJ정부때도 그는 한 건(?)했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내가 문화부(당시명칭)장관 재직시절, 유진룡을 공보관으로 임명했었는데, 공보관 임명 후 ‘DJ정부 공보업무에도 신경 좀 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더니, ‘그건 문화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거절했었다”는 그와 얽힌 일화를 언론에 소개한바 있다.
이렇듯 유 전 장관은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공무원이었다. 우리 공직사회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권력자의 잣대로 내편, 저편식으로 재단하다보니 그는 ‘여기저기서 모두 버림받은 공직자’라는 멍에를 얻게됐다.
유진룡. 그는 진보‧보수정권 양쪽에서 모두 면직당했다. 그에게 문제는 없었던 것일까.
그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단점으로 지나친 ‘엘리트주의’를 꼽기도 한다. 또 행시 출신으로서 공무원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합성어)’스러운 모습도 없지 않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 이런 공직자가 한 두명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유 전 장관이 오늘 실시간 검색어에 하루 종일 이름을 올린 이유일 것이다.
지난 2013년 그의 문광부장관 취임사의 일부다. “맡은 일들을 소신있게 추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당당한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공무원 상(象)을 읽을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인천 출신이고 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한양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제22회 5급공개경쟁채용시험(옛 행정고시)에 합격, 문화공보부에 주로 근무했고 문화산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2006년 1월 문화관광부 차관 후 같은해 7월 경질됐다. 2013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취임했고 2014년 7월 갑작스럽게 경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