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28 14:40

비 앞에 먼저 닿는 기상(氣象)의 하나가 바람이다. 바람은 그래서 비를 부르는 조짐이다. 바람과 비를 연결한 시구는 많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 하나가 있다.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이 적은 “산비 오려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 찬다(山雨欲來風滿樓)”는 표현이다.

멀리 보이는 산에 내리는 비, 그에 앞서 먼저 닿아 마루 가득 차는 바람을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으로 잡아 그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시다. 여기서 바람과 비는 그저 자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달리 암시하는 무엇이 있다. 그 둘은 기상의 현저한 변화를 상징한다.

변화는 일상과 범상(凡常)을 해친다. 그로써 이어졌던 현상의 틀은 무너진다. 새로운 것이 등장해 주변의 모습은 금세 바뀐다. 따라서 한자세계에서 등장하는 풍우는 새로 닥칠 변화, 나아가 일상의 안온함을 깨는 위기의 요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풍우’는 다른 표현이 퍽 많다. 풍운(風雲), 풍상(風霜), 풍림(風霖)이 우선 눈에 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을 적은 풍파(風波)도 마찬가지다. 풍랑(風浪)은 그와 동의어다. 풍설(風雪)은 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비를 대신한 표현이다.

오랜 가뭄 뒤에 내리는 비는 얼마나 반가울까. 그런 정경을 읊는 시도 있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봄밤에 맞는 기쁜 비(春夜喜雨)’가 대표적이다. 그는 세상을 포근히 적시는 고마운 봄비를 “사물을 적시네, 촉촉이 소리 없이(潤物細無聲)”이라고 적어 아주 큰 공감의 영역을 제공키도 했다.

그러나 바람과 비는 앞에서 적었듯 일상의 고요와 평정을 깨는 그 무엇으로 등장할 때가 더 많다. 풍우와 같은 맥락의 풍운, 풍상, 풍림, 풍파, 풍랑, 풍설 등이 대개는 앞에서 닥쳐 현재의 틀을 깨는 요소로 읽힌다. 그 중의 대부분은 전란(戰亂)이나 큰 재난(災難)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만성풍우(滿城風雨)라고 적는 성어가 있다. 성 안에 비바람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요즘의 중국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성어다. 원래는 가을에 닥친 비와 바람으로 어지러워진 상황을 읊은 서경(敍景)이었으나, 스캔들 등의 사건으로 사회가 소란스러워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성어로 자리 잡았다.

올해 후반이 그랬다. 서울이라는 도시, 대한민국의 모든 곳이 청와대 비선 측근으로부터 번진 스캔들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 사회 모든 곳을 누비는 바람과 비로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다가올 새 해의 우리사회 기상도 또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선 비가 많이 닥칠 듯하다. 그에 앞서 오는 바람도 거셀 모양이다. 대통령 탄핵의 판결이 나올 봄 무렵에는 거센 풍파(風波)가 닥칠 기세다. 그를 가라앉힐 사회의 역량이 부족하면 그 해 여름에는 아주 센 폭풍(暴風)이 우리를 휩쓸지도 모른다.

곡식과 과일이 영글어야 할 가을에는 대권을 향한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져 황망한 풍운(風雲)을 몰고 다닐 것이다. 선거로 권력의 정점이 만들어진 뒤가 문제다. 한 해 내내 일었던 풍랑(風浪)을 잘 앉혀야 한다. 그러지를 못하면 나라 안팎으로 우리가 잃은 사회 전반의 동력을 되살릴 기회가 사라진다. 그 뒤에 닥치는 기상이 있다면 겨울의 차디찬 풍설(風雪)이겠다.

바람과 비에서 변화를 읽고 위기를 감지해야 한다. 그로써 안정을 다시 생각하며 미래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권력의 게이트로 이미 닥친 대한민국 오늘의 바람과 비 앞에서 우리 모두가 정작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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