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6.12.28 15:19

[뉴스웍스=이상호기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새벽 1시 45분경 긴급체포됐다.  특검팀의 긴급체포 결정에는 문 전 장관이 이미 확보된 증거, 주요 관계인의 진술과 배치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검팀의 칼끝은 박근혜 정부와 삼성의 불투명한 거래를 향하고 있고 이 행보의 도중에 문 전 장관의 긴급체포가 놓이게 된 형국이다.

문 전 장관의 긴급체포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21일 공식 수사를 시작한 이후 강제 수단을 동원해 신병을 확보한 첫 사례다. 손꼽히는 연금·복지 전문가였던 문 전 장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참고인 신분이었으나 하룻밤 사이에 녹색 수의 차림의 피의자 신분으로 곤두박질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원내대변인의 지적처럼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약속 대신 최순실 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국민의 노후를 내팽개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문 전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에 찬성 의견을 내라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저평가돼 수천억원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 예상됐음에도 강행했다는 정황이 공개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 27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진술은 문 전 장관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했다. 홍 전 본부장은 특검에서 연금 기금운용본부 차원의 의사 결정에 따라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고위 간부로부터 합병 찬성에 관한 요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부 국장급 공무원들이 특검에서 한 진술과 맥을 같이한다. 합병 반대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이는 의결권전문위 논의를 거치는 대신 기금운용본부가 독자결정하라는 취지의 문 전 장관 주문이 있었다는 진술이었다.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을 때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장관 시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상향에 반대하기 위해 ‘세대 간 도적질’, ‘1700조 세금폭탄론’ 등 갈등을 부추기는 방법을 택했다. 또 국민연금 재정건전성 강화를 강조하며 보험료 인상과 수급연령 상향을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4월 <보건복지포럼>에 기고한 글에서도 ‘저부담-고급여 구조 해소’가 성과였음을 강조했다. 이는 집권당도 강조했던 복지 강화 주장과 반대되는 논리다. 국민연금의 공적 기능에 불신을 조장하는 태도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명이 삼성 합병 공로에 대한 보은 인사라는 복지부 내부 폭로도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삼성 합병 찬성안을 주도한 홍 본부장의 연임을 거부한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밀어내고 문 전 장관을 그 자리에 앉히려는 의중이 강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사장 공모에 이례적으로 3명만 지원해 문 전 장관 선임이 미리 결정된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사적연금도 구설에 올랐다. 2013년 10월에 복지부 장관 후보자 검증과정에서 6000만원대 사적연금에 가입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공개된 문 후보자의 사적연금 계좌는 3개였다. ING생명의 ‘프리스타일 연금보험 전기납 50’에 3581만원, 삼성생명의 ‘연금저축골드연금’에 2400만원이 예치돼 있었고 2012년에는 삼성생명의 ‘연금저축골드연금’을 중복 개설해 420만원을 적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전 장관은 38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사임했다. 메르스 확진이 된 이후에도 보건복지부는 병원, 발병지역, 기타 확진자 정보 등을 공개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국민들로서는 정부의 재난 대응능력을 불신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게다가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공개됐을 당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문 전 장관이 징계 대상에서 빠져 논란이 됐다. 당시 감사원은 질병관리본부 직원 12명, 복지부와 보건소 직원 각각 2명 등 총 16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문 전 장관은 1990년대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활동했고 2000년대 들어 국민연금제도발전전문위원회와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후반기에는 2년 간 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실에 파견돼 공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연금과 복지 정책의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으며 공직의 꽃길을 걷던 그가 5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스캔들의 한가운데에 섰다. 주범‧종범 여부에 관계없이 불합리한 의사결정에 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권위 실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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