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30 16:34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죄업(罪業)은 웬만한 사람이면 피할 길이 없다. 보통은 악업(惡業)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몸으로 그런 죄업이나 악업을 지으면 신업(身業)이다. 직접 행위를 통해 저지르는 일이다. 실제 행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음만으로 뜻을 품으면 의업(意業)이다.

입으로 쏟아내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구업(口業)이다. 신업에 비해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 역시 마음으로 짓는 업보인 의업에 비해서도 그렇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쏟아져 나가면 수습할 방도가 없다. 금세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심각한 모욕을 안길 뿐만 아니라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악화도 부른다.

이 구업에도 종류가 있다. 허망하면서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의 말은 망어(妄語)다. 이를 테면 거짓이자 조작이다. 허언(虛言)이랄 수도 있고 가언(假言)이라고 적어도 무방하다. 진실을 담은 말의 반대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해치고,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다.

악구(惡口)도 입으로 짓는 업보의 하나다. 남을 비방하는 언사다. 거짓의 말로 남을 비난해서 그 이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 험구(險口) 또는 험담(險談), 악담(惡談)이라고도 한다. 비수와 같은 거짓의 말로 남의 마음을 크게 해친다. 양설(兩舌)도 그에 해당한다. 쉽게 바뀌는 말로 거짓을 만들어내고, 남과 남 사이를 이간질하는 언어다.

기어(綺語)라는 낱말도 있다. 역시 구업의 하나다. 綺(기)는 좋은 비단을 가리키는 글자다. 말을 교묘하게 꾸며 남에게 듣기는 좋게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마음과 명예 등을 해치는 언어행위를 기어라고 적는다. 음란함을 품는 발언도 이에 속한다. 역시 정당하며 사람 사이의 에티켓을 무너뜨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면서 짓는 구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마다 많이 쌓이는 모양이다. 구업여산(口業如山)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구업이 산처럼 높고 크다는 점을 가리키는 성어다.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에 가려지기 쉬운 사람은 제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할 때보다는 남의 결점을 보면서 제 마음을 달래기 십상이다.

그로써 신업과 의업을 짓고, 달리는 입으로 험한 말을 쏟아내면서 구업을 쌓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런 마음 자체를 내지 않으면 좋다. 그러나 여러 욕망에 가린 사람의 마음은 그런 길을 좀체 찾아내기 힘들다. 결국 업보를 지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모진 사슬에 제 마음과 몸을 얽고 만다.

중국의 속언에 이런 말이 있다. “고요히 앉아있을 때도 늘 제 잘못을 생각하고, 한가로이 말을 할 때도 남의 잘못은 들추지 않는다(靜坐常思己過, 閑談莫論人非)”는 내용이다. 남의 잘못에 앞서 제 잘못을 먼저 생각하면 마음은 평정을 찾을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성적 파동을 경계하며 시비(是非)를 함부로 옮기지 않으면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구업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다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파동을 억누르는 일이 보통의 사람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무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악언(惡言), 험담, 험구, 폭언이 늘 넘쳤던 우리 사회다. 그로써 이 사회의 분위기는 매우 그악해졌고, 그 정도는 줄어들 가능성마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의 악담이 날로 더해진다. 그로 인해 불붙는 하찮은 싸움은 진흙 밭에 뒹구는 강아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풍경을 살피면서 먼저 스스로를 성찰한다. 나는 이 한 해 얼마나 많은 구업을 지었는가. 역시 산처럼 높고 크다. 구업을 청정케 하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도 염송해볼까. 저무는 해가 시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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