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2 14:27

새해의 아침을 한자로는 원단(元旦)이라고 한다. ‘으뜸’, 나아가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元(원)과 떠오르는 아침 해를 형상화한 ‘새벽’이라는 새김의 旦(단)이라는 글자의 합성이다. 이로써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맞이하는 새벽이나 아침을 가리키는 낱말로 자리 잡았다.

특히 元(원)은 글자 자체가 사람의 머리를 표현한 내용이어서 새해, 또는 그 처음에 해당하는 날과 달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원정(元正), 원일(元日)이라고 하면 모두 설날을 가리킨다. 원조(元朝)라고 적으면 설날(元)의 아침(朝)을 지칭하는 말이다. 원월(元月)은 새해 첫 달인 정월(正月)의 다른 말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의 흐름은 옛 동양사회의 음력설을 가리킨다. 그러나 서양력이 일반화한 요즘에는 해가 바뀐 양력 1월에도 곧잘 이런 말을 사용하는 때도 있다. 그와 함께 예전에 자주 썼던 말 가운데 하나가 벽두(劈頭)다.

이 말의 원래 뜻은 그리 상서롭지 않다. 말 그대로 풀면 ‘머리(頭)를 내려치다(劈)’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칼을 비롯한 무기 등을 손에 잡고 상대의 머리를 내려치는 일이니 모습과 새김이 결코 편안치가 않다. 그럼에도 이 말은 새해 첫 무렵에 해당하는 어느 때나 상황을 가리킬 때 자주 썼다.

당두(當頭)라는 말과 어울린다. 머리에 곧 닥칠 어떤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머리는 몸의 여러 부위 가운데 꼭짓점에 해당한다. 가장 높은 곳, 가장 먼저 닿는 곳, 또 가장 먼저 외부의 요소를 맞이하는 곳을 머리로 본 셈이다. 그 머리로 먼저 맞거나 닿는다는 뜻에서 이 말은 ‘처음’을 알리는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를 강조하는 말이 ‘벽두’다. 외부의 기운이 가장 먼저 닿아 풀리기 시작하는 지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시작을 알리는 기점(起點)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초두(初頭), 연두(年頭) 등의 단어도 적지 않게 썼다. 특히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의 일정에서 새해 처음 여는 행사 등에 이런 말을 많이 사용했다.

두서(頭緖)는 실타래에 엉켜있는 실의 꾸러미 가운데 끝머리, 나아가 전체 실타래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꼭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써 처음이나 시작에 해당하는 지점을 가리켰다가 일의 순서 중에서 처음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 일의 시작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새해 처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많은 흐름과 가닥이 잡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토대에서 만들어진 말 중의 하나가 벽두(劈頭)라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처음 닿는 부분, 새 요소가 진입해 한 해의 물상(物象)과 기운, 분위기가 정해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올해 벽두에 대통령의 ‘갑작스런’ 기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대통령은 전 해 벌어진 아주 소란스런 정국과 스캔들에 나름대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번진 사태를 수습하는 효과보다는 그를 더 번지게 하는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다.

국정 최고의 책임자로서 지녀야 했던 도덕적 정당성이 국민으로부터 커다란 의심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를 해소할 만한 대응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법리적인 절차에서는 탄핵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비선 실세가 발호할 정도로 국정의 맥을 방기(放棄)하다시피 한 점을 국민들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그런 도덕적 정당성에 관한 책임을 외면하고 법리적으로 잘못한 점이 없다는 변명과 책임 회피의 태도를 보이고 말았다. 이로써 여전히 정국은 소란스러울 듯하다. 새해 벽두에 참신해서 상서로운 기상이 닿기보다는 날카로운 칼과 도끼가 머리를 겨누는 형국으로 비친다.

새해의 시작은 적어도 기운이 한 데 뭉쳐 멀리 나아가도록 하는 합(合)을 이뤄야 바람직하다. 무엇인가 쪼개고 갈라져서 흩어지며 떨어져나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곤란하다. 올 한 해 또한 그리 소란스럽고 갈라져서 쪼개지며 흩어지는 기상이 번질 듯하다. 이 벽두가 그래서 퍽이나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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