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2 14:37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인근에 있는 수도 박물관 정면 모습이다. 조선의 임금이 행차해 머물렀던 성덕정(聖德亭)의 앞글자와 우리 근대 최초 수돗물 수원지였던 이곳의 水(수)라는 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 성수(聖水)다.

그런 글자이다 보니 함부로 쓸 수는 없다. 최고의 도덕과 지혜를 이룬 공자孔子를 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었고, 왕조 시절 최고로 존엄尊嚴한 사람이었던 임금과 그 부인 등을 형용할 때만 쓸 수 있었던 글자다. 임금의 명령이나 뜻이 담긴 글을 성지聖旨라고 적었고, 임금의 생각을 성려聖慮, 그의 결정을 성재聖裁, 임금이 좋아하는 것을 성권聖眷, 임금이 듣는 일을 성총聖聰, 뛰어난 임금을 성군聖君, 임금에 대한 신하와 백성의 호칭을 성상聖上 등으로 적었다.

종교적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의 조합도 무수하다. 예수가 태어난 날을 성탄聖誕, 또는 성탄절聖誕節로 부른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도 큰 명절이기 때문이다. 신이 머무는 곳을 성전聖殿, 종교적 의미를 지닌 전쟁을 성전聖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모聖母, 예수의 마지막 식사를 성찬聖餐 등으로 적는 예다.

그런 단어의 조합을 나열하는 일은 끝이 없다. 그러니 예서 이쯤으로 생략하고, 이 글자가 지닌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 과거 한문의 세계가 ‘사람의 뛰어남’을 어떤 글자와 단어로 표시했는지를 살펴보자. 과거 동양에서는 사람 중의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일컬을 때 보통은 성현聖賢으로 적었다.

보통은 아주 뛰어났던 전설상의 옛 임금과 공자를 한 줄로 이었다. 즉 전설속의 요堯, 순舜, 우禹를 먼저 언급했다. 태평의 시절을 이뤘고, 인류의 삶을 위해서 지극한 공로를 쌓았다는 점을 샀다. 이어서는 은殷(또는 商)나라의 탕湯, 주周나라의 문文과 무武임금, 주공周公에 이어 공자를 그 반열에 함께 올렸다. 유가의 맥락에서 성인의 계보를 이렇게 이었던 것이다.

과거 동양사회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게 유가의 사고다. 따라서 성인聖人은 그런 맥락으로 바라본 과거 사회 최고의 인물이다. 명明에 이르면서 공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고의 성인이라는 뜻으로 지성至聖이라 적었고, 그의 제자 안회顔回는 공자의 뜻인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잘 이뤘다고 해서 복성復聖, 자사子思는 공자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는 이유로 술성述聖, 맹자孟子는 후세에 미친 영향이 공자에 버금간다는 이유로 아성亞聖이라고 적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각 영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도 이 글자가 붙었다. 시인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인 두보杜甫에게는 시성詩聖, 중국 역사학의 기초를 다졌던 사마천司馬遷에게는 사성史聖, 최고의 명필인 왕희지王羲之에게는 서성書聖, 명나라 때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지은 이시진李時珍에게는 약성藥聖의 타이틀을 다는 식이다.

그 다음의 수준에 오른 사람이 바로 현인賢人이다. 우리는 이 단어의 앞 글자 賢(현)을 보통은 ‘어질다’라고 풀지만, 실제의 뜻은 지혜로움이다. 사물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함부로 범하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인격적으로 아주 성숙한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글자다. 현명賢明이라는 단어가 가장 대표적이고, 아주 뛰어난 재상 또는 총리를 부를 때 현상賢相이라고 쓴다. 재주 등이 뛰어난 사람에게 붙이는 영현英賢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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