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1.05 09:47

여기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 하나가 서 있다.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받치고 장갑 낀 왼손은 자신 있게 들어 보이면서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인한 여성의 눈빛이다. 도발적이다. 여성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리면 장갑 사이로 도발적인 꼬리 하나를 발견한다. 저 구부러진 꼬리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위험한 생물의 꼬리이다.

레오노르 피니의 ‘전갈이 있는 자화상(Self Portrait with Scorpion, 1938)’은 조용하고 절제된 화면 가운데 약간의 충격을 유발한다.

Leonor Fini <Self Portrait with Scorpion> 1938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 1907~ 1996)는 페미니즘 미술의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가운데 신비한 에로스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퇴폐적인 이미지와 신화 같은 강인한 여성 이미지, 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묶여 있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강하고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오노르 피니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고전주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독학했다.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시체 보관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17세 때 밀라노로 건너가 초상화 위주의 작품 활동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는다. 그녀는 첫 전시회 직후인 1930년, 예술의 도시 파리로 건너간다. 앙드레 브르통, 막스 에른스트와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자의 중심인물들과 가까이 지내고 함께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인 예속물로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과 그들의 우월 의식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레오노라 캐링턴, 프리다 칼로 등 여성 화가들과 연대한다. 또한 그는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연애했다. 구혼자들이 수도 없었고 한 번 결혼했지만 피니는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어 여러 고양이와 살았다.

피니의 모든 작품은 하나로 통한다. 여성의 자율성과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부터 강한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니느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보다 강함을 표현하기를 즐겼다.

"나는 내게 운명 지어진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선 저항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주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피니의 말은 그러한 의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내면이 강한 사람을 강하다고 한다. 겉보기에 아무리 강해도 내면이 약한 사람은 강하다고 하지 않는다. 강한 사람은 누구든 내면에 강력한 것을 품고 있다. 그 강력함은 비밀의 영역에 있다. 나는 그 영역 안에 다양한 것들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안에 바위 같은 든든함과 칼 같은 예리함과 전갈 같은 독함이 혼재되어 있다.

이처럼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안의 전갈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못되고 날카로운 독성이 있다. 이 독성은 예상외로 강하고 파급력이 커서 자신과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입힌다. 이 마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강한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악할 수밖에 없는 본성과 다르게 살아가는 삶, 자신 안의 전갈에 저항하는 삶은 강인한 삶이다. 오늘 내 안의 전갈을 어떻게 감추어낼지 전략을 짜봐야겠다. 이 전갈에 크게 물리지 않고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해보자.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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