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홰치는 닭의 빛나는 아침
[이호영의 덕후철학] 홰치는 닭의 빛나는 아침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7.01.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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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하면 치킨이다. 우리에게 치킨은 그냥 닭요리가 아니라 ‘치느님’이라는 신(神)이다. 치느님만으로도 위대하지만 ‘맥주’ 그리고 ‘축구’를 위시한 즐거움이 함께하면 완전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행복의 투사(投射)이기에 신이다.

그런 닭들이 아프다. 독감에 콜록거리며 ‘치느님’이 되지 못하는 한을 남긴 채 땅에 묻히고 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아리다. 그럼 니체처럼 우리도 ‘치느님’의 죽음을 외쳐야 할까? 그건 매우 옳지 못하다. 절대 아닐 것이다.

닭의 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았다지만 아직 어둡다.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직 닭의 수난이 끝나지 않았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는 지났건만 아직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까치 까치 설날’이 아닌 ‘우리 우리 설날’은 동지가 아니다. 일양(一陽)이 다시 돌아온다(復來)는 입춘(立春)과 함께 온다.

한국의 전통음식은 닭이다. 한식 하면 김치나 불고기를 대표로 들지만, 한국을 찾는 대부분의 외국인(중국인과 일본인)은 김치나 불고기가 아니라 삼계탕과 치킨을 찾는다. 게다가 드라마를 통해 ‘치맥’이 워낙 유명해져서 쏠림은 더욱 심해졌다. 그렇다. 한국에서 개발한 독자적 요리법의 치킨이야말로 진정한 현대 한식이다. 치킨이란 바로 한국이 전 세계에 외친 목소리다. 세계가 요구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답은 옳다. 이미 한식은 치킨으로 세계화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동물은 봉황(鳳凰)이다. 생긴 것만 보자면 닭과 별 다를 바 없다. 벼슬이 있는 날짐승이 그리 흔한 게 아니다. 보자면 꼬리가 좀 긴 닭이다. 거기서 사는 대통령의 별명도 ‘닭’이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우리나라가 치킨의 나라임을 증명하는 증표가 아닐 수 없다.

불행하게도 그는 진정한 닭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한 가짜 닭이다. 아니 머리만 닭이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닭이란 삼계탕, 닭도리탕 혹은 치킨이다. 행복과 즐거움을 불러오기에 ‘치느님’이다. 닭 머리로는 치킨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신화적인 불사의 존재로 불새(phoenix)가 있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새다. 봉황의 친구쯤 되는 새로서 불 속에 뛰어 들어 죽으면, 죽은 자리에 알이 남는다. 이 알이 부화하여 다시 불새가 된다. 동남아나 인도의 신화적인 새 가루다(garuda)로 등장한다. 봉황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벼슬을 달고 있다. 신화적 이미지만 보자면 구운 닭에 해당하는 야끼도리(焼き鳥)다.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에 보면 아브락사스(abraxas)라는 새가 나온다. 인간의 몸에 수탉의 머리를 갖고, 두 개의 다리는 뱀으로 이뤄진 고대 그리스의 그노시스(Gnosis)파의 신이다. 오른손에 방패, 왼손에 채찍을 든 모습이다. 아브락사스는 모든 정령을 관할하는 신으로 악한 것을 물리치고 사람들은 보호해주는 신이었다. 유명한 영어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도 원래 여기서 나온 말이다.

헷세는 소설에서도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이 새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신성”이며 신비주의적 완전성의 상징이다.

2017년은 붉은 닭의 해이다. 불새가 다른 게 아니다. 붉은 닭이다. 아브락사스 역시 한 입만 먹어도 입에 불이 나는 불닭이다. 우리의 아브락사스는 ‘치느님’이다. 닭의 해가 왔다고 해도 아직 수난이 끝나지 않았다. 아브락사스가 그렇듯 우리의 ‘치느님’도 모든 사악함을 떨치고 알에서 나오려고 싸우고 있다. 아마도 ‘치느님’에게도 이 고난이 지나면 십자가에 달리는 희생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 밤 지나야 홰치는 닭의 빛나는 아침이 올 것이다. 모든 고난을 이기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 재속에서 부활할 그 아침을 기다린다. 헷세의 말대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우리도 새 세계를 열려는 이 부리짓(啐啄)에 함께 동참함이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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