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5 15:41

요즘 이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두고 빚어진 한국과의 갈등으로 한류(韓流)를 비롯해 각 산업 영역에서 한국 콘텐트와 상품 등에 제재(制裁)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재’라는 단어의 어감은 썩 좋지 않다. 남의 행동을 구속하는 일이어서다. 자연스러운 일일 수 없으나, 때로는 마구 번지는 무엇인가를 수습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동원해야 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이 단어 속 두 글자의 출발은 자르고, 다듬는 행위다.

앞 글자 制(제)는 모양이 비교적 뚜렷하다. 칼(刂)로 나뭇가지를 치고 잘라내는 모습이다. 그로써 얻은 뜻이 ‘다듬다’ ‘잘라내다’ ‘쳐내다’ 등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얻은 새김은 ‘억누르다’ ‘금하다’ 등이다. 더 나중에는 어긋나는 행동을 바로 잡는 법(法)의 개념까지 얻었다.

쓰임은 퍽 많은 편이다. 대나무의 마디, 또는 그런 마디처럼 잘라 내다는 새김의 節(절)과 맞물리면 절제(節制)다. 나아가야 할 상황, 물러나야 할 때, 벌여야 할 길목, 수습해서 거둬들여야 할 지점에서 경우에 맞게 행동하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한계를 설정해서 그 이상의 범주로 내닫지 않게 하는 일은 제한(制限), 한제(限制)다.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선을 그어두고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일은 금제(禁制)다. 금지(禁止)와 같은 흐름의 낱말이다.

일정한 크기의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쓰는 컴퍼스는 한자로 規(규)다. 길이를 재는 자의 한자 尺(척)과 함께 옛 사회에서 법률이나 법칙 등을 가리키기도 했던 글자다. 이 ‘컴퍼스’처럼 범위를 특정해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일은 규제(規制)다. 우리 행정당국이 때로는 ‘쓸 데 없이’ 남발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고삐를 잡는 행위 등에 쓸 수 있는 한자는 牽(견)이다. 원래는 제사에 쓰는 희생(犧牲), 그 중에서도 잡아 바치는 소를 끄는 동작을 가리켰던 글자다. 이로써 글자는 ‘붙잡다’ ‘끌어당기다’ 등의 새김을 얻었다. 이 글자가 앞에 붙으면 견제(牽制)다. 끌거나 당기고, 때로는 붙잡아 상대의 동작을 멈추도록 하는 일이다.

남의 뜻과는 상관없이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의 행동을 막는 일은 강제(强制)다. 짓눌러서 상대의 몸이나 마음의 자유를 구속하면 억제(抑制)다. 누르거나 막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제지(制止)다. 더 강한 힘으로 완전히 남을 누른다면 압제(壓制)다.

주변의 사소한 부분보다 전체적인 틀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일은 통제(統制), 한 방향의 쏠림이 강해 홀로 다수를 눌러 이끄는 일은 전제(專制)다. 일정한 이념의 틀로 독재와 유사한 통치체제를 구축한 정체(政體)를 거론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제재’라는 단어 뒤의 글자 裁(재)는 옷감을 자르는 일이다. 옷을 만들기 위해 가져다 놓은 옷감을 칼이나 가위 등으로 쳐내는 행위다. 그렇듯 판단을 해서 어떤 사안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결재(決裁)라고 적는다. 옷감을 잘라 내듯이 제 뜻대로 일을 꾸미면 재단(裁斷)이다.

이리저리 재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일은 그래서 재판(裁判)이다. 여러 사람의 뜻을 모으지 않고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일은 독재(獨裁)다. 정치판에서 권력을 쥔 사람이 함부로 제 뜻을 관철하는 경우다.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이나 입장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중재(仲裁)라고 한다.

한국의 콘텐트나 상품을 두고 벌이는 중국의 제재가 바람직하지 않다. 한 나라의 안보 사안을 제 입맛에만 맞춰 판단한 뒤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이는 일들이다. 제재와 규제 등은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지녀야 설득력이 있다.

핵 개발에 열중하는 북한의 위협으로 한국의 안보는 급박한 실정이다. 그에 실효적인 기여를 하지 않은 채 제 전략적 이해만 앞세우며 벌이는 중국의 제재, 규제, 제한, 재단이 중국의 국가적 양식(良識)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케 하는 요즘이다. 이로써 중국의 진면목(眞面目)을 많은 한국인이 새삼 깨달을 수 있을까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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