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소운기자
  • 입력 2017.03.15 13:39

[4부 새로운 교육-공교육 정상화하고 범국가적인 해결책 찾아야]

[뉴스웍스=이소운기자] 사교육 열풍이 망국병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지 오래다. 하지만 선행학습금지법도, 공교육 정상화도, 대학입시 제도 변화도, 그 어떤 것도 고삐 풀린 사교육을 잡을 묘책이 없다.

끝모르게 치솟는 사교육비는 가계 부채 확대에 일조하고 가정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공교육이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기 어렵다. 하지만 거꾸로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한 사교육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다. 결국 사교육 창궐은 교육으로부터 ‘희망의 사다리’라는 기능을 빼앗고 사회불평등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국내 사교육비 규모 30조원 넘어

지난해 통계청이 내놓은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5년 초·중·고등학생의 사교육비는 1인당 월 평균 24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참여율은 68.8%로, 10명 중 7명 정도가 사교육을 받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교육비는 2015년 기준 20조1266억원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초등학교 24만 1000원, 중학교 26만 2000원, 고등학교 21만 8000원이었고 사교육을 받는 학생 기준으로는 28만 4000원(초), 36만 8000원(중), 42만 2000원(고)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학부모들은 이같은 평균치에 코웃음친다. 월평균 20만원대, 실제 사교육을 받는 고등학생도 42만원 정도라면 웬만한 중산층이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데 사교육이 망국병이네, 가정파괴범이네 하는 얘기까지 나왔겠느냐는 것이다.

통계청이나 정부 통계는 초중고생만 포함돼 있지만 실제로 영유아 대상 사교육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는 전국민이 다 안다.

영어교육 전문기업인 윤선생의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74%가 취학전 자녀에게 한글, 영어, 창의력놀이 등 사교육을 시킨 경험이 있으며 평균 3.2개 과목에 월평균 25만8000원을 지출한다고 답했다. 이 역시 평균치일뿐 영어유치원은 월 100만원이 웃도는 교육비를 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2014년 기준 32조9000억원에 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배 많은 규모라고 발표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고액과외 등을 포함한 한국의 사교육 지하경제가 15조원 안팎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대입제도 변화도 사교육 풍선효과만 가져올뿐

올 11월 치러질 2018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는 처음으로 영어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된다. 학생의 실력을 변별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는 과잉학습 부담과 무한경쟁을 유발해 사교육비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교육부가 내린 결정이다.

영어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사교육을 줄여보자는 정책 취지는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의도가 늘 바람직한 제도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학원가에서는 올해부터 영어 대신 변별력이 커지는 국어와 수학 실력이 수능을 좌우한다며 전략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사교육의 풍선효과가 현실화된 것이다.

특히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를 받은 2017 수능의 경우 국어 영역 만점자가 0.2%대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웠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6월 모의평가부터 갑자기 지문이 길어지고 어려워진 국어에 대비해 일부 학원들이 로스쿨 법학적성능력시험(리트)을 활용해 적중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불수능을 틈탄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학 사교육의 파행은 대치동·목동·중계동 등 이른바 ‘사교육 과열지구’의 주요 학원에서 초등 4학년에게 고2 과정인 미적분Ⅰ을 가르치는 등 더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만연해 있는 가운데 영어 절대평가의 풍선효과는 수학에서 더욱 확연해졌다.

서울 주요대학들은 2018년 정시모집 수능 영역별 반영 비율에서 수학 비중을 대거 높였다. 서울대와 중앙대는 수학 비중을 40%로 높였다. 고려대 역시 201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수학 반영 비율을 2017학년도(28.6~30%)에 비해 높아진 35.7~37.5%로, 서강대도 전년(32.5~35%)보다 훨씬 높은 46.9%로 높였다.

대학입시용 사교육의 폐해는 수능시험뿐만이 아니다. 내신과 학교 생활, 잠재력 등의 평가로 학생을 뽑아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교내 수상실적, 독서활동, 자율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이 ‘스펙’ 위주로 흘러가면서 학부모 개입 및 사교육 과열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교육 과열이 나라 불태울 지경

우리나라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고도성장기를 거친 뿌리 깊은 학벌주의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명문대를 나오면 좋은 일자리를 얻고 승진도 빨라 성장의 혜택을 최대한 누릴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축적된 이전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도 명문대를 나와 좋은 일자리를 얻게 하기 위해 사교육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고 쏠림 현상이 빠른 한국은 순식간에 세계 제일의 ‘사교육 공화국’이 돼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기가 뜨겁다 못해 주변을 다 태우고 파괴시킬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가계가 적자 상태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를 지출해 빈곤하게 사는 가구가 갈수록 늘면서 과도한 사교육비가 가계 재정을 위협하는 에듀푸어(Edu-Poo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더욱이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은 부부의 노후 대책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만 사실은 자식의 미래와 부모의 노후를 맞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듀푸어’가 ‘실버푸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할수록 교육 불평등의 그림자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는 학생 1인당 월평균 6만6000원의 사교육비가 투입된데 비해 월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 비용은 42만원으로 가구소득별 사교육비 격차가 7배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이상 교육만의 문제 아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 풍토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서열 체제 완화 ▲결과 중심의 대입 전형을 과정 중심으로 재편 ▲노동시장에서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 문제 척결 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이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해결방안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게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문제에 맞서 정면대결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더 이상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고용 등 사회 많은 분야와 난마처럼 얽혀 있는 만큼 얽힌 실타래를 풀지 않고 둘 경우 가정경제, 나아가 국가 운영의 근간을 흔드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우천식 KDI 박사는 "사교육비의 소득계층간 커다란 격차는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며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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