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6 15:17

우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 말 자주 들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일의 가장 기본이 우선 출석(出席) 여부를 체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친숙한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 안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스토리가 있다.

출석은 ‘자리에 나아가다’는 뜻이다. 그러나 둘째 글자 席(석)은 조금이나마 따져 볼 여지가 있는 글자다. 우리는 그냥 ‘자리’로만 이 글자를 인지한다. 정확하게 따질 때의 새김은 그처럼 단순치 않다. 자리는 자리임에 분명하지만 땅바닥에 주저앉는 자리다.

볏짚이나 풀 등을 엮어 만들어 요즘의 방석이나 돗자리 등으로 삼는 그런 자리다. 한반도의 우리는 이런 자리에 익숙하다. 입식(立式) 생활이 보편화하기 전의 한반도 주민들은 대개 거적이나 방석 등을 깔고 방바닥에 무릎을 구부려 쭈그려 앉는 좌식(坐式)으로 살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자리에 익숙하다. 그러나 입식 생활이 일찍이 자리를 잡았던 서양, 그보다는 나중이라도 우리보다는 훨씬 일찍 의자와 침대를 사용했던 중국은 이런 자리가 낯설다. 그래서 서양인이나 중국인의 상당수는 한국의 무릎 꾸부려 앉는 식당에 들어서면 얼굴이 창백해질 때가 많다.

아무튼 이 席(석)이라는 ‘자리’는 한자세계에 퍽 많이 등장한다. 오래 전 중국의 큰 땅에 살며 좌식 생활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조어이자 성어다. 우선 이 글자가 성어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이 대표적이다. 앉아있어도 뭔가 불안해하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성어다.

할석(割席)이라는 전고도 있다. 누군가를 깊이 미워해서 바닥에 깔고 앉는 돗자리 등을 칼로 베어 나눠 앉는 일이다. 割席而坐(할석이좌)는 그 스토리의 성어 식 표현이다. 座無虛席(좌무허석)이라는 중국 성어도 있다. 모든 자리가 꽉 차서 성황(盛況)을 이룰 때 쓰는 성어다.

孔席墨突(공석묵돌)이라는 성어는 흥미를 끈다. 공자(孔子)가 깔고 앉는 돗자리(席), 묵자(墨子)가 썼던 굴뚝(突)이라는 구성이다. 춘추시대의 공자와 전국시대의 묵자는 매우 바빴다. 자신을 알아주는 제후를 찾아 유세를 벌여 제 뜻을 펼치려는 공자는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묵자는 약한 나라의 제후를 찾아가 강한 나라로부터의 전쟁 위협을 막는 데 바빴다. 그래서 둘은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공자의 주장을 받아주는 제후가 거의 없었고, 묵자는 전쟁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분주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람의 상황을 표현할 때 이 성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석권(席卷)이라는 말도 있다. 席捲(석권)으로도 쓴다. ‘자리를 말아 올리다’는 구성이다. 앉을 때 까는 돗자리, 방석 등은 들어서 얼른 말아 올릴 수 있다. 일정한 기운이 그렇듯 급속히 번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보통은 어떤 경쟁에서 급속히 우위를 차지하는 사람이나 그런 정황을 가리킬 때 쓴다.

그러나 다른 뜻도 있다. 자리를 냉큼 말아 올린 뒤 줄행랑을 놓는 경우다. 席卷而逃(석권이도)라고 적는 중국 성어가 꼭 그런 때를 가리킨다. 경쟁 등에서 급속히 우세를 차지하는 행위나 상황과는 거리가 먼 풀이다. 그럼에도 자리를 신속하게 말아 손에 움켜쥔 뒤 도망을 치는 사람의 행위가 그럴 듯하게 그려졌다.

쭈그려서 땅바닥에 앉는 자리가 席(석)이라는 점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이 글자는 이제 버젓이 일반적인 ‘자리’의 뜻을 차지해 우리 일상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출석과 비슷한 뜻의 참석(參席), 빠지고 나오지 않는 결석(缺席), 1등에 해당하는 수석(首席), 자리에 앉는 착석(着席), 손님의 자리인 객석(客席),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청석(傍聽席) 등 다양한 쓰임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 다른 성어는 석고대죄(席藁待罪)다. 마른 볏짚 등을 땅에 깔고 앉아 처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마땅히 처벌을 기다리며 근신과 자중을 해야 한다는 경고가 담긴 성어다. 사회와 국가가 정한 법과 규범을 어겨 큰 물의를 빚은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일으킨 풍파가 아주 크다. 그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비선 실세의 준동을 도운 공직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출석 요구를 거부한 채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출석 여부가 언론들의 집중적인 관심거리다.

마땅히 자리를 깔고 앉아 처벌을 기다려야 하는 석고대죄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검찰과 법원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자리를 말아 쥐고 도망치는 석권(席卷)의 행위자보다 더 괘씸하다. 자리를 깔고 앉아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마음조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에게 국정의 큰 축을 맡겼다는 점이 내내 믿어지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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