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7.01.06 16:39
<사진=YTN 영상 캡쳐>

[뉴스웍스=이상호기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은 일본의 아픈 고리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불만을 강력하게 표명하며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부산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의 귀국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산시의 행사에 일본 총영사관 직원들이 참석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압박 카드까지 내놨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논의해온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의 중단과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도 발표했다.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에 비하면 한참 거센 반응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부산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위배한다고 주장한다.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59조는 ‘영사관사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접수국은 침입 또는 손괴로부터 명예영사관원을 장으로 하는 영사기관의 영사관사를 보호하며 또한 영사기관의 평온에 대한 교란 또는 그 위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됨으로써 총영사관의 평온이 교란되고 위엄이 손상됐는데도 한국 정부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의 합의 내용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당시 한국 정부가 발표한 합의문에는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 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합의에 대해 양국 정부는 각기 다른 해석을 해왔다. 일본이 자국에서 소녀상 문제를 해결했다고 언급하면 한국 정부는 철거에 합의한 바 없다고 부인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여기에 한국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위안부협상을 폐기하거나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일본 정부로서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상징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소녀상은 ‘위안부’ 전체를 재현한다기보다 거기에서 자행된 국가범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소녀상은 소녀의 ‘순수성’을 보여준다기보다 ‘보편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엄청난 과오를 드러내고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지우기에 골몰해왔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가 소녀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었고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일어난 일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일본에게 소녀상은 그 자체로 이런 일본 정부의 주장을 꾸준하고 무겁게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한일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사죄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지적이 바로 나왔다. 먼저 일본 총리의 입으로 한 것이 아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대리 사죄였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간 전화통화를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는 사실관계가 확인되긴 했지만 아베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사죄 의사를 밝혔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처럼 '영혼없는' 사죄 때문인지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한 것도 요식행위쯤으로 치부돼왔다.

평화의 소녀상은 1992년 수요집회가 처음 시작된 이후 1000회째를 맞는 2011년 12월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됐다. 처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조형물 설치를 기획했을 당시에는 묘비나 비석 같은 형태였지만 허가 용이성 등의 이유로 소녀의 모습을 한 예술작품으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도출됐다. 예술작품으로 분류하면 법적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운성, 김서경 부부작가가 공동작업한 소녀상은 한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소녀가 무릎 위에 주먹을 꽉쥐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단호한 모습의 소녀는 지금도 일본대사관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서울에만 있던 '평화의 소녀상'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기원하며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지금까지 광주, 대전, 천안, 창원 등 전국에 20개의 소녀상이 건립됐으며 이외에도 10군데가 예산을 확보해 조만간 소녀상을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인들에게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행해진 국가범죄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다. 일본이 단순히 소녀상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제거한다고 해서 면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 스스로 나서 문제의 매듭을 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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