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시평] 소환(召喚)
[한자시평] 소환(召喚)
  • 유광종
  • 승인 2017.01.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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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서 묻고 싶은데 불러도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야말로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이다. 그렇게 부르는 일은 여러 한자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주목을 받는 말은 召喚(소환)이다. 이는 공적이며 법적인 영역에서 많이 사용한다.

한 사회의 공적이며 법적인 영역은 중요하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규범과 법률 등이 고르게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허물면 그 다음에 닥치는 것은 소요(騷擾)와 혼란(混亂)일 수밖에 없다. 정한 원칙이 무너져 사람들의 행위를 옳게 규제하는 잣대 자체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앞의 召(소)다. 풀이는 다소 엇갈린다. 그러나 한자 초기의 갑골문 세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요소가 주술(呪術)과 제례(祭禮)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글자 역시 그런 흐름에서 파악하는 게 좋을 듯싶다.

이 글자는 刀(도)와 口(구)의 두 요소다. 초기 글자꼴에서 刀(도)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온다. 아래의 口(구)는 주술과 점복(占卜)에 따르는 ‘하늘의 계시’를 담는 그릇 정도로 파악할 때가 많다. 그에 따르면 召(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메시지, 또는 그를 직접 가져오는 신의 존재 등을 표현했다고 풀 수 있다.

아마 그로부터 번진 뜻이 지금의 새김인 ‘부르다’일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는 나중의 쓰임에서도 자못 의미가 무겁다. 대개 왕조시절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의 명령이나 뜻, 그에 따라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행위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소명(召命)이라고 적으면 임금이 신하 등을 부르는 명령이라는 뜻이다. 순서를 뒤바꿔 명소(命召)라고 적으면 임금이 신하를 특별히 불러들이는 행위다. 성소(聖召)라고 적으면 땅 위의 제왕보다 한 층 더 격이 높은 하늘의 신이 성직(聖職)이나 종교적인 수행에 누군가를 부르다는 의미다.

빙소(聘召)는 공적인 기관이 일정한 예를 갖춘 뒤 사람을 쓰고자 부르는 일을 가리킨다. 소모(召募)는 사람들을 널리 불러 모으는 일이다. 그와 같은 맥락의 단어가 소집(召集)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자주 사용했던 단어들이다.

‘부르다’는 새김이 훨씬 강한 招(초)는 召(소)의 새김에 손을 가리키는 扌(수)를 덧붙여 의미를 강화한 글자다. 초청(招請)이나 초대(招待), 초빙(招聘) 등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글자다. 초모(招募)도 사람들을 여럿 불러 모으는 뜻의 단어로 예전에 많이 썼다.

아무튼 소환(召喚)은 법원이나 검찰 등이 피고인이나 증인, 감정인 등을 법적인 절차에서의 필요에 따라 불러들여 필요한 진술이나 증언 등을 듣기 위해 벌이는 행위다. 국회 또한 입법 기관으로서 청문회 등을 열어 관련자들을 부를 때 이 용어의 절차를 집행한다.

옛 왕조시대의 임금이 필요에 의해 사람을 부르던 일이 이제는 사법 및 입법 등 공적인 영역에서의 일로 정착한 셈이다. 이런 용례로 볼 때 召(소)라는 글자가 따르는 행위는 대개 사적이라기보다 공적이다. 나름대로 사회의 근간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같은 발음이지만 뜻은 다소 다른 말이 召還(소환)이다. 불러서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다. 이는 외국에 나간 자국의 사절(使節)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주재국과의 중요한 교섭에 문제가 생겼으며, 그 정도가 심각함을 강조할 때 종종 벌이는 일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열리는 국회의 청문회가 비록 말잔치, 의원들의 정치적 과시 등으로 흐르는 혐의는 없지 않으나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진단하고 검증하기 위한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소환하는 사람들의 출석률이 너무 낮다.

어떤 대통령 핵심 비서 둘은 종적 자체를 감추고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법을 출세의 수단으로서만 배웠음인지 한 핵심 수석은 요상한 법리를 들어 청문회의 소환을 피한다. 공적이며 규범적인 영역의 중요성을 비웃고 제가 있었던 자리에서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행위다.

제 이해를 잠시 벗어두고 법과 규범이 부르는 자리에 나아가 이 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살펴볼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그 소환 또한 대답 없는 메아리일 테다. 양심과 양식의 부름은 그렇듯 이 사회에서 아무런 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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