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7.03.20 09:00

[4부 새로운 교육-승자·패자 구분하는 교육제도 개혁해야]

지난해 5월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공부의 배신>의 한 장면. 서울대의 한 학생이 자신의 출신고교가 적힌 학교점퍼를 입고 있다. <사진=EBS 캡쳐>

[뉴스웍스=김동우기자] 지난해 5월 EBS 다큐프라임은 <공부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중 2부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의 한 장면은 캡쳐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퍼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사진은 서울대의 한 학생이 학교점퍼에 자신의 출신고교 이름을 새겨 넣은 모습이다. 다큐는 이 장면을 소개하면서 같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출신고, 입학전형, 학과에 따라 서열에 정해지는 대학가의 현실을 지적했다.

사회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 번 성공한 창조적 소수들이 자신이 성공한 방법을 절대적 진리인양 우상화하는 것을 ‘휴브리스(Hubris, 오만)’라고 불렀다. 한국의 교육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다.

이러한 무의미한 경쟁은 학생들에게 휴브리스를 강제한다. 서울대도 모자라 출신고교의 이름까지 적혀있는 이 점퍼는 어쩌면 ‘줄 세우기’에 익숙해진 한국학생들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휴브리스를 양산하는 교육제도

한 사람이 있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그는 서울대에 현역으로 입학해 사상 최연소인 만 20세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이후로도 승진을 거듭하며 권력의 핵심이라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자리까지 오른다. 그야말로 ‘꽃길’만 걸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헌정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돼, 온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고 싶다던 그는 부정부패의 정중앙에 서 있다. 어쩌면 그는 휴브리스를 양산하는 한국의 교육제도가 낳은 괴물일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에 이은 승자독식이라는 사회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한 학생들에게 자기성찰을 할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다. 입시가 끝나면 학생들에게는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승자에게는 캠퍼스의 로망이, 패자에게는 열등감이 주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재’들은 사회적 차별을 당연시 여길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겼으니 남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을 지당하게 생각한다. ‘그’ 역시 막대한 재산과 권력으로 남을 속이고 짓밟으며 인생을 향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百年樹人)

지금 한국의 교육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것은 OECD국가 중 10대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지표로도 드러난다. 매년 11월에는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자신을 패자로 인식하고 목숨을 던졌다는 뉴스가 지면을 채우고 있다.

교육은 패자를 솎아내는 작업이 아니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획일화된 기준에 따른 줄 세우기가 계속된다면, 학벌과 물질의 축적이 여전히 성공의 기준으로 여겨진다면, 학생들을 암기하는 기계로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이런 비극은 언제까지고 되풀이 될 것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것만큼 남는 투자가 있을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이제 구시대적 교육제도를 타파하고 공부의 정의와 성공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주입식 교육시스템으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이제 학교는 경쟁에 이겨서 1등이 되는 법이 아닌 부끄러움을 아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부할 권리도 마땅히 누려야 한다. 학생 모두가 자신의 색깔을 살려내고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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