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9 17:37
금천 일대가 6.25전쟁 와중에 폭격을 받는 모습이다. 성어 '천고마비(天高馬肥)'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원래 전쟁의 시작, 또는 그 조짐을 알리는 말이었다. <사진=미 항공우주박물관>

서쪽 멀리의 칭하이(靑海)에서 발원한 황하는 여러 번 굽이를 치지만 가장 크게 꺾여 북상하는 구간이 이 산시와 옆 산시(陝西)의 경계를 이룬다. 거의 90도 가까이 꺾여 북으로 물줄기가 향하면서 이 발음 비슷한 두 성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시절의 전쟁에서는 항상 그 경계선 북단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와 연관이 있는 성어를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한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을 노래하는 성어다. 우리에게는, 더구나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가을을 예찬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원천을 따져보면 성어가 가리키는 내용은 차라리 재앙에 가까웠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하늘이 높아진다는 것은 가을의 기운이 깊어져 날씨가 맑아진다는 뜻 외에 기온이 내려감을 의미한다.

기온이 내려가면 우선 강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러면 북방의 초원에서 한 여름에 자라난 무수한 풀들을 먹고 몸집을 키운 말들이 얼어붙은 강 위를 지나 황토 고원을 넘어선다. 전쟁의 북소리는 그래서 울린다. 이어 수많은 말들이 엉키며 뒹구는 땅에서는 황토의 먼지가 허공을 메운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을 찌우는 그런 계절, 즉 앞에서 적은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성어에 관해서는 조금 더 부연이 필요할 듯싶다. 이 말을 함께 사용하는 한반도 사람들은 뒤에 성어 하나를 더 붙였다. 바로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등잔의 불(燈火)를 가까이(親) 할 만(可) 하다는 식의 구성이다. 우리는 이 말을 함께 병렬했다. ‘천고마비, 등화가친(天高馬肥, 燈火可親)’으로 말이다.

무더운 여름의 기운이 가셔지고 말이 저절로 살 찔 정도로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으니, 등잔불을 가까이 해서 책을 읽으라는 이른바 ‘독서 권장’의 멘트다. 책 읽기에는 더 없이 좋은 시절이니 그 시간 놓치지 말고 공부와 수양에 힘을 쓰라는 권유다. 참 낭만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는 그렇게 가을이 다가오면 책을 읽고 마음의 수양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이 말의 중국 원전(原典)은 ‘秋高馬肥(추고마비)’다. 북송의 명신(名臣) 이강(李綱)이라는 인물이 북쪽의 여진족인 금(金)나라의 침략 가능성을 황제에게 아뢰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당시 황제인 휘종(徽宗)에게 “가을 날씨가 서늘해져 말이 살찌면, 오랑캐가 다시 닥쳐와 예전의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라는 취지로 이 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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