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0 15:39

폭력적이면서 시비를 잘 일으키고, 규범에 어긋나는 일은 함부로 하는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행패(行悖)라는 낱말을 쓸 수 있다. 사납게 굴면서 도리를 좀체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말이나 행동의 폭력성 또한 심각해서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悖(패)는 마음(忄)과 孛(패 또는 발)의 합성이다. 뒤의 孛(패, 발)은 초기 글자꼴을 보면 무성하게 자라는 풀과 아이를 뜻하는 子(자)의 결합으로 나온다. 따라서 무성하게 무엇인가 자라는 모양을 가리키는 글자로 풀 수 있다. 그에 마음을 가리키는 忄(심)이 붙으면 悖(패)다.

이 글자는 나중에 어그러지다. 어긋나다, 도리 등을 지키지 않다 등의 새김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성하게 무엇인가 자라 엉클어진 마음, 또는 그런 행위 등을 지칭하는 흐름으로 접어들었던 듯하다. 그런 엉클어진 마음을 바깥의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행패(行悖)다.

이 글자의 꼴과 새김이 결코 간단치는 않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자가 자주 등장하는 때가 있다. 사람의 행동이 법규는 물론이고, 관습적인 규범이나 도리 등을 자주 어기는 경우다. 유학의 가르침이 성행했던 조선시대에서는 아무래도 그를 꺼리는 언어의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특히 윤리와 도덕의 어긋남을 경계할 때 이 글자가 자주 등장했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 친지와의 중요한 질서인 윤리(倫理)를 깨뜨리는 일은 패륜(悖倫)이다. 가족 안의 질서는 아주 중요한 토대다. 각 관계의 설정에서 윤리적으로 정한 틀을 깨는 일이 바로 패륜이다.

패악(悖惡)이라는 말은 윤리와 도덕을 쉽게 어기면서 악행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성정이 몹시 못되고 함부로 법의 근간을 허무는 이의 행동이다. 일상의 룰을 함부로 깨서 남에게 해를 미치는 사람에게는 괴패(乖悖)라는 말을 썼다. 여기서 乖(괴)는 마찬가지 새김이다. 어긋나는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언행이나 행동이 비비꼬인 사람의 성격을 가리킬 때는 패려(悖戾)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戾(려)는 어긋나며 사나운 사람의 성정으로 볼 수 있다. 흉패(凶悖)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흉악함을 가리키는 凶(흉)이 강조하는 용법으로 등장했다.

정치가 상도(常道)와 상궤(常軌)를 넘어서며 부조리한 상황으로 치달을 때 그런 정치는 패정(悖政)이다. 아주 사나워 포악하기까지 한 정치의 행위다. 폭정(暴政)과 같은 맥락이면서 그 어긋나는 경우가 강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임금은 패군(悖君)으로 적었다. 역시 폭군(暴君)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행패라는 말이 가장 익숙하다. 시정(市井)의 잡배, 시쳇말로 양아치 등이 하는 행동이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제 신체적인 힘, 돈의 힘, 가족의 힘, 신분의 힘 등을 앞세워 폭력이나 그에 준하는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요즘 한 재벌 집안의 젊은이가 스캔들을 일으켜 화제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탁자에 걸터앉아 종업원을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패악에 가까운 일을 버젓이 했으니 행패의 주인공이다. 덕을 잃었으니 패덕(悖德)은 물론이고 괴패, 패려 등의 말에 퍽 어울린다.

문제는 그가 이 사회의 힘겨운 도움으로 재벌의 성가(聲價)를 쌓은 집안의 자제라는 점이다. 돈으로만 쌓은 성가 때문인지 물력(物力)에만 견줘 사람을 함부로 보는 버릇이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이런 이에게 사회의 희생과 양보로 지속적인 부를 물려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가혹한 응징이 필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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