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재아기자
  • 입력 2017.01.10 17:57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이재아기자] 나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입, 뉴스, 국회 청문회장, 특검, 법원은 물론 헌재에서까지... 온통 내 얘기뿐이고 실시간 검색어까지 부지런히 오르내리느라 피곤한 날들을 보내고 있죠.

내가 더 바빠진 이유는 지난 5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 측이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나를 제출해 조사를 받게 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이런 관심과 유명세가 익숙합니다.

나는 2010년 애플이 발표한 ‘아이패드’란 별명을 달고 스타 반열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노트북과 PDA의 혼합형 기기인 나는 납작한 판 같은 생김새에다, '펜을 이용해 공책처럼', '키보드를 부착해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에겐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이후 다양한 회사에서 여러 옷을 입혀줘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블루투스나 무선랜 등 네트워크 환경이 점차 좋아진데다 나를 따라다닐 휴대용 장비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를 지치고 졸리게 했던 CPU 발열 문제나, 짧은 배터리 시간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됐죠.

또 나는 열심히 살을 빼서 한층 가볍고 얇아졌고, 몸에 카메라를 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별다른 도구없이도 나를 맨손으로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제공=픽사베이>

이처럼 옛날에는 저절로 뒤따라오는 인기를 맘껏 누리기만 하면 됐는데 최근 들어선 이놈의 관심 때문에 부담이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우선 지난해 10월 24일에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관련, JTBC가 공개했던 태블릿PC와 나는 출신이 다릅니다.

이날 하루종일 인터넷에서 소위 '태블릿PC 2탄'으로 소개되고 있는 나는 최순실씨의 독일 코레스포츠 설립과 관련한 다수의 이메일, 2015년 10월 13일 박 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말씀자료 중간 수정본 등을 갖고 있습니다.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가 나를 2015년 7월경부터 11월경까지 최순실씨가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을 감안하면 최씨는 박 대통령의 임기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도 문서 작성에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임 초기에만 최씨의 의견을 들었다는 박 대통령의 해명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죠. 나는 뛰어난 두뇌를 활용, '조카가 이모를 배신한 걸까' 하는 상념에 하루종일 사로잡혀 있기도 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내 안에서 삼성그룹의 지원금 관련 이메일 문서도 발견돼 특검팀은 '최씨-박 대통령-삼성' 등 3자가 연루된 뇌물 혐의를 규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나에게서 구체적인 이메일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에 따라 삼성의 최씨 측 자금 지원이 최씨 및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고 삼성도 자금이 최씨 측에 흘러갈 것을 알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검은 이처럼 내가 갖고있는 이메일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이 생겨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소환 조사한 뒤 곧바로 구속 영장을 검토하는 것 같습니다.

그간 삼성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일이 2015년 7월 10일이고,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독대가 그보다 뒤인 같은 달 25일이었던 점을 들어 청탁 의혹을 일축해왔습니다. 

그러나 나에게서 조만간 삼성의 최씨 측 지원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 찬성 이전에 논의된 정황 증거가 나타난다면 이제 삼성의 뿌리를 뒤흔드는 것을 넘어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턱밑까지 파고 들 기회가 생깁니다.

아, 갑자기 내가 이 사건들의 해결 단서를 모두 쥔 ‘스모킹 건’이 된 것 같아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납니다.

특검팀이 나를 이리저리 들춰보느라 힘들지만 현 정부의 파렴치한 ‘국정농단’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도록 나는 핵심 자료들을 꼭 끌어안고 끝까지 수사에 적극 협조할 생각입니다. 부디 다음번에는 내가 새롭게 가지게 된 기능이 유명해져 또다시 인기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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