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7.01.11 15:25

[뉴스웍스=김벼리기자] “Yes, we can!” 희망찬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 연설에서도 희망과 변화를 역설했다.

오는 20일(현지시간)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미국 시카고의 대형 컨벤션센터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고별연설을 했다. 이날 그는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을 더 나은 나라, 더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자부함과 동시에 자신의 대표적 캐치프레이즈인 ”우리는 할 수 있다“로 연설을 마치며 퇴임 이후 미국의 미래를 강조했다.

오바마는 지난 1961년 8월 4일 미국 하와이주의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의 하와이대학 흑인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미국인이자 백인이었다. 두 살 무렵 그의 부모가 이혼한 뒤 오바마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케냐로 돌아갔다.

오바마에게 청소년 시절은 혼란기였다. 그는 당시 술, 담배뿐만 아니라 마약에도 손을 댔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학업에 정진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뒤였다.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대학교에 진학한 오바마는 2년 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과에 편입했다. 졸업 후 1985년부터는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특히 시카고 빈민가에서 주민들의 주거 및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헌신했다.

3년 뒤 오바마는 1988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2년 미셸 로빈슨과 결혼했으며, 1993년부터 2004년까지는 시카고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처음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6년이었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총 세 번 당선됐다. 200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했으며, 4년 뒤 2004년 연방 상원의원에 다시 도전해 당선, 그 해 유일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2007년 2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오바마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최종 경합한 끝에 2008년 8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변화(change)',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오바마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그 결과 2008년 11월 4일 대선에서 그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2009년 1월 20일. 오바마는 ‘제44대 미국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이름을 올렸다.

취임 후 오바마는 앞선 부시 정권의 일방적인 외교정책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중동평화회담을 재개하는 데 힘쓰고, 핵무기 감축,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제분쟁 해결, 기후변화 대응, 오바마 케어 추진 등에 역점을 뒀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2009년에는 "국제외교와 인류들의 협력 강화를 위하여 기울인 비상한 노력"을 평가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기 말인 2012년 오바마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시 출마해 연임에 도전,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와 접전을 벌인 끝에 재선에 성공했다. 집권 2기에도 오바마는 재정절벽, 시퀘스터,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A), 이란 핵 협상 타결, 파리 기후 협약 타결 등 미국을 너머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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