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2 15:22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호도(糊塗)다. 쌀 등을 물에 오래 담갔다가 걸쭉하게 만들어 그 끈기를 사용해 물건 등의 사이를 붙이는 게 풀이다. 이 풀을 가리키는 글자가 糊(호)다. 다음 글자 塗(도)는 우선 진흙이라는 뜻, 아울러 색깔 등을 입히는 ‘칠하다’ ‘바르다’ 등의 새김이 있다. 때로는 사람이 지나는 길의 의미로도 쓴다.

糊(호)는 우리말 쓰임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자주 쓰는 말에 등장하는 때가 있다. 호구(糊口)라고 적을 때다. 이 단어는 직접 풀면 ‘입에 풀칠을 하다’다. 밥 먹는 행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아울러 생계(生計)를 지칭하는 단어다. 호구지책(糊口之策), 호구지계(糊口之計)는 그래서 생계를 위한 방도를 일컫는다.

모호(模糊)도 자주 쓰는 말이다. 어떤 물건의 틀을 이루는 게 模(모)다. 때로는 법과 기준이라는 뜻의 모범(模範)이라는 단어에도 등장한다. 그런 틀이나 기준 등에 풀칠이 가해지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풀 수 있다. 겉모습, 또는 모습 자체 등에 어떤 분식(粉飾)이 가해져 흐려지는 모양새다.

塗(도)는 쓰임이 적지 않다. 우선 ‘바르다’는 새김의 맥락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도색(塗色)이다. 어떤 물건 등에 색깔을 발라 얹는 일이다. 집안의 방 등에 종이를 바르는 일은 도배(塗褙)라고 적는다. 칠하는 염료 등을 일컫는 단어는 도료(塗料)다. 그렇듯 색깔 등을 물건에 입히는 일 자체는 도장(塗裝)이라고 적는다.

일패도지(一敗塗地)라는 성어 표현도 자주 쓴다. 전쟁 등에서 적에게 패해 아군 병사의 시체와 몸속 장기(臟器) 등이 땅을 뒤덮었다는 뜻이다. 원래는 간뇌도지(肝腦塗地)라는 말이 우선이다. 그렇게 참패를 기록할 때 쓰는 말이 ‘일패도지’다.

어쨌든 호도(糊塗)는 풀로 대충 발라 물체를 잇거나, 덮어버리는 일이다. 문제를 두고 단기적이며 임시적인 처방으로 일관하는 경우, 일시적인 해결만을 노리는 미봉(彌縫)의 행위, 아예 덧칠을 함으로써 진짜 모습을 가리는 거짓의 행동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와 함께 어리석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의 예라기보다 중국의 경우다. 중국은 이 말을 ‘총명(聰明)’과 반대에 놓는다. 똑똑함의 정반대인 어리석고 흐릿하며, 때로는 모자라는 사람의 능력과 수준을 가리킬 때 쓴다. 그러면서도 이 ‘호도’를 승격시킬 때도 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총명함보다 흐릿하게 상황을 넘기는 호도가 더 낫다고 보는 경우다. 이는 풀이가 여럿이어서 다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큰일을 챙기고 작은 일은 잘 버무려 탈이 나지 않게 하는 지혜로움의 뜻으로 등장할 때가 있다는 점만 적어두자.

우리말 쓰임에서 이 ‘호도’는 결코 좋지 않다. 진상을 가리기 위한 거짓,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불성실함, 아예 방향을 제 의도대로 바꾸려는 사악함의 흐름에서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신문지면의 지칭 대상은 늘 욕을 먹어야 하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줄곧 초미의 관심사인 모양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 저울에도 결국 이 사안은 오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청와대 측의 설명이 여전히 부족한 듯하다. 일부 언론과 정치 세력들은 이를 ‘호도’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얼버무림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거짓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뜻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의 ‘7시간 행적’이 국민 모두의 답답함을 더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