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6 13:55

이 단어 구설(口舌)은 우선 인체의 입과 혀를 가리킨다. 사람 입모양을 그린 口(구)라는 글자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다음 글자 舌(설) 역시 입과 함께 움직이는 혓바닥의 표현이다. 두 글자가 합쳐졌을 때 번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입과 혀라는 단순 지칭을 넘어선다.

우선은 사람의 말, 또는 말을 하는 행위라는 새김이 있다. 아울러 그 말로써 일으키는 시비와 비난 등의 뜻도 있다. “구설수가 있다”고 할 때의 구설수(口舌數)는 한 해의 운세를 볼 때 자주 등장한다. 이 구설수가 있는 사람은 그 기간 내내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여긴다.

그냥 오르내릴 리가 없다. 이러쿵저러쿵 쏟아내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갖은 폄하와 욕, 시비에 휩쓸릴 때가 많다. 그래서 “구설수에 시달릴 수 있다”는 말은 경고에 가깝다. 함부로 행동하거나 입을 놀려 시비를 일으키지 말라는 권고다.

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에서 오늘은 혓바닥을 가리키는 舌(설)에 주목하고 싶다. 이 글자의 쓰임도 퍽 많다. 비위(脾胃)가 거뜬해 뭐든지 잘 먹는 사람은 식육점에 가서도 소 혓바닥을 즐긴다. 우설(牛舌)이다. 생각보다 풍미가 좋아 이를 즐기는 사람 적지 않다. 오리의 혓바닥은 鴨舌(압설)로 적을 수 있는데, 식도락을 즐기는 중국인에게 인기 메뉴다. 사슴 혓바닥 녹설(鹿舌)은 값지고 귀한 음식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인다.

사람의 말에도 품격이 있다. 마구 쏟아지는 사람의 말이 높은 수준에서 균일함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사회의 문화수준도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입말 수준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그를 바랄만한 수준은 아니다.

우선 독설(毒舌)이 횡행한다. 잔뜩 독기를 품고 남을 공격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이다. 악설(惡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없는 것을 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를 더 얹는다.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모욕을 주기 위해 나쁜 말을 보태는 언어행위다.

찌르고 자르는 일은 과거 전쟁 때 흔했다. 그렇듯 무기나 그 이미지를 들어 표현하는 언어행위가 있다. 설검(舌劍)이라고 적으면 혓바닥, 즉 말솜씨가 날카로운 칼처럼 남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일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과는 다르다. 찌르고 베어내는 말이다. 남을 공격하는 그악한 말솜씨를 일컫는다.

설봉(舌鋒)이라고 적어도 마찬가지다. 뒤의 鋒(봉)은 과거 칼과 창을 비롯한 각종 무기의 날, 또는 날의 끝을 일컫는 글자다. 아주 날카로워 남을 금세 해치는 병기의 일부다. 따라서 설봉은 설검과 같다. 남을 공격하는 정도가 아주 심한 언사다.

그렇게 혀끝을 함부로 놀리는 일은 농설(弄舌)이다. 제 품격은 생각지 않고 마구 세 치 혀 삼촌설(三寸舌)을 놀려 상대를 허무는 데 열중하는 행위다. 교묘하게 혓바닥 놀리는 일은 교설(巧舌)이다. 교언(巧言)과 같은 뜻이다. 말을 간사하게 꾸며 진상을 호도하며 상대에게 불이익을 안기려는 의도의 말솜씨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말은 장설(長舌)로 적는다. 다변(多辯)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는 장광설(長廣舌)에서 나왔다. 이 장광설은 본래 좋은 흐름이었다. 부처의 말씀을 뜻했으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쓸 데 없이 많이 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설경(舌耕)이라는 말도 있다. 혓바닥(舌)으로 농사를 짓는다(耕)? 직역하면 그리 풀 수 있다. 그러나 말로 생업을 삼는 사람, 또는 그런 행위를 가리킨다. 강연, 변론이나 글을 지어 생계를 잇는 사람, 그런 행위다. 대학 교수나 강사, 학교 선생이나 학원 강사, 변호사, 기자 등과 그들의 직업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도 이에 든다.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직업이라서 그렇다. 정치에서는 그래서 말이 매우 중요하다. 말로써 흥할 수도 있으나 말로써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의도를 담아 말을 건네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말로 시작해 막말로 가끔 흥하다가, 결국 세 치 혀 잘못 놀려 패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막말이 번지고 그를 감정적으로 따르는 대중의 선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에 품격을 실어 정치로 옮기지 못하는 사회는 그 말로써 결국 혼란을 빚어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 절차에 들어섰다고 해서, 제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럼에도 권력이 아쉬워서 막말에 쌍말까지 쏟아내는 정치인을 또 보고 있다. 현직과 전직 대통령을 동원하고, 그에 남녀의 성(性)까지 덧댄다. 말의 타락이, 혓바닥의 농락이 이 정도에 이르면 사회는 심한 중증에 빠진 셈이다. 독설(毒舌)의 설화(舌禍)가 아주 도저해 이 것이 화근인지를 깨닫기가 힘든 우리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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