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7 17:01

우리처럼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술잔에 술을 잘 따르는 일이다. 상대에게 술을 따를 때 넘치거나 아주 모자라면 곤란하다. 적당하게 잘 따라야 한다. 상대가 특히 직장 상사라거나 높은 사람일 경우에 그렇다.

짐작(斟酌)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모자라지 않게 술을 따르는 일이 斟(짐), 흘러넘치게 따르는 행위가 酌(작)이다. ‘짐작’은 모자라지도 않게, 흘러넘치지도 술을 따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써 적당하게 일의 다소(多少)와 대소(大小)를 가려 적당하게 처리하는 사람의 능력, 나아가 사정을 헤아리는 일 등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작(酬酌)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뭔 수작이야?”라고 눈을 부라리며 욕하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말로 흔히 받아들이지만 원래는 술을 따르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酬(수)는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따라 권하는 동작, 酌(작)은 손님이 주인에게 그와 같이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써 수작(酬酌)은 술잔을 주고받음, 서로 거래하면서 얻어 챙기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했다. 이런 점 생각해보면 고래로부터 동양 사회의 사람 사이 중요한 거래와 교제(交際) 등이 다 술잔에 술을 따르는 일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과 천계(天界)의 신위(神位)가 서로 감응하는 방법에서도 술을 따르는 일은 흔했다. 동양의 보통 제사에서는 늘 술이 등장한다. 술을 바치는 일은 기본이고, 술을 술잔에 따라 신에게 경의를 표한 뒤 그를 땅에 뿌리는 일도 중요했다. 그 술의 향기로써 신령(神靈)을 불러들이기 위한 의례다.

그래서 삼헌(三獻)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제례를 진행하면서 신께 바치는 세 잔의 술을 가리킨다. 처음 올리는 술을 초헌(初獻), 둘째로 바치는 술을 아헌(亞獻), 마지막에 바치는 술은 종헌(終獻)이라고 했다.

여기에 보이는 獻(헌)이라는 글자가 솥을 가리키는 鬳(권)과 강아지를 지칭하는 犬(견)의 합성이다. 제사에 쓰는 희생인 개를 솥에다가 삶아 바친다는 뜻이다. 그로써 남에게 무엇인가를 바치고 드리는 일, 헌납(獻納)과 공헌(貢獻) 등의 조어로 이어졌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늘 화제다. 언론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가 보다. 이번에는 퇴주(退酒)가 논란으로 번졌다. 고향의 선친 묘소에 가서 인사하다가 술잔으로 술을 받아 먼저 신위에게 올려야 했던 잔을 마셔버렸다는 이유다.

첫 잔, 둘째 잔, 셋째 잔을 모두 먼저 신령께 바쳐야 하는 동양의 의례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그로써 수작(酬酌)에 관한 동양의 의례를 잘 모른다면서 비판하는 언론에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편승하고 있다. 수작에 밝지 않으니 대권에서도 자격 미달임을 드러낸 것일까.

그러나 동양의 의례는 형식에만 있지 않다. 예의가 지니는 형식에 못지않게 그 마음을 지녔다는 점이 확실하면 과도한 질책을 하지 않는 법이다. 동서양, 고금(古今)에서 다 그렇다. 그러니 ‘수작’ 제대로 못하는 대권 후보를 과도하게 탓하지 말아야 한다.

참작(參酌)이라는 말도 있다. 술잔에 술을 따르는 일을 제대로 헤아리는 행위다. 겉과 명분만 따지지 말고 실제 술이 넘치는지, 모자라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그로써 실제의 상황을 제대로 헤아리는 행동이다. 그렇게 하자. 일거수일투족에 비난과 탄성만 내지르지 말고 실제의 내용을 헤아리는 일이 대권 후보들의 속내를 파악해보려는 우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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