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1.18 09:33

뒤늦게 안타까운 부고를 받았다. 사십 해를 나는 아직 못 살았는데 벌써 어린 사람을 여럿 떠나보내게 되었다. 오늘의 부고가 더 마음 아팠던 것은 스무 살을 겨우 넘긴 젊은이였기 때문이며, 그를 보내줄 가족이 몇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를 깊이 사랑했던 이들이 모여 그의 가는 길을 눈물로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젊은이는 한때 나를 무척 따랐다. 나 역시 그를 아들처럼 안쓰러워했던 때가 있었다. 뒤늦게 미안해서 더욱 슬펐다. 마음이 날카롭게 얼어붙은 듯했다.

얼어붙은 눈물의 순간이 담긴 그림을 나는 알고 있다.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 Rogier Van der Weyden)의 ‘십자가에서 내림 (The Descent from the Cross, 1435)’이다.

Rogier van der Weyden, The Descent from the Cross, 1435

‘십자가에서 내림’은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아래 지속되어온 서양미술의 전형적인 주제다. 신의 시대였던 중세부터 이 그림이 그려진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이어진 매너리즘기, 바로크 시기까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이 주제는 종교적인 승화를 위해서나 감정적인 분출을 위해서나 극적이었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고전을 기반으로 인간성을 부활하기 원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에 비해, 개신교를 기반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원했던 북유럽 르네상스 가운데에서도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은 보다 특별하다. 그는 인간적인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림’을 선택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와 함께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다. 고딕 양식을 이어받아 표현의 자세함 가운데 감정을 막도록 했던 얀 반 아이크와 달리 그의 작품은 정밀함 가운데 뜨거운 감성이 흐른다. 이러한 감정의 표현은 또 다른 의미의 사실성을 탄생시킨다. 그의 육체는 앞선 작가들과 다르게 보다 인간적이다. 물론 완벽한 인체 해부학이나 물질적 표현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흐르는 듯한 육체와 약간 과장된 꺾임의 옷자락을 따라 시선은 옮겨가고 감정은 조용히 폭발한다.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앞선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수직적이고 대칭적인 형상으로 정적인 구도를 완성했다면, 이 그림에서의 로지에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사선으로 내리고, 성모 마리아가 바닥에 닿아 구부러지는 모습, 성 요한이 그녀를 부축하는 모습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구도를 완성한다. 인간의 감정을 누를 수 없는 순간 인간의 육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다 뜨겁게 관찰하고 표현한 것이다.

얀 반 아이크와 당대 다른 작가들이 그러하였듯이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도 세부 묘사에 능했다. 여자들의 둘둘 말린 머릿수건이나 치렁치렁한 옷, 주름지게 당겨 묶은 허리끈, 두꺼운 옷의 질감과 그 위에 올려진 무늬, 사람들의 거칠한 손발과 그 아래 놓인 해골 역시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묘사력이 빛나는 것은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통해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다.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도, 성 요한도, 성모 마리아도, 마리아 살로메도, 막달라 마리아도 눈물을 수이 닦아내지 못하고 있다. 슬픔의 감정은 너무나 깊고 슬픔의 시간은 헤아릴 수가 없다. 시간은 얼어붙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얼어붙어 눈물에 담긴다. 그들의 깊은 슬픔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울고 있어서가 아닐까. 슬픔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모든 것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이의 눈물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를 보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마음에 담는 것이고, 상실은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 그리고 나면 결국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사랑의 마지막은 눈물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마지막을 눈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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