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LP, 왕의 귀환
[이호영의 덕후철학] LP, 왕의 귀환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7.01.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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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에서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LP로만 음악을 듣고, LP음을 따서 피아노로 친다. 아카데미를 7개나 수상한, 잘 나가는 상업영화가 재즈와 LP를 들고 나온 건 그 만큼 시장에서 LP와 재즈가 잘 팔린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 LP가 CD의 판매량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고 작년엔 음원 다운로드 판매액보다 높았다. 본격적으로 LP가 다시 귀환한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어떻게 LP처럼 번거롭고 성가시며 한계가 확실한 물건이 다시 대세로 뜰 수 있는가? 디지털을 중심으로 4차 산업으로 접어드는 세계에 LP의 귀환이란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이상현상이라는 말이다.

LP는 귀환한 왕이자 새로운 패션이다. LP가 왕이던 1970년대에는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음악사에서 흘러나오는 아바ABBA를 듣다가 길을 건너가면 카페에서 비틀즈The Beatles가 들린다. LP독재시대였다. ‘어디서나’ ‘누구나’ 틀었다. 하지만 지금 LP는 절대 ‘어디서나’ ‘누구나’가 틀수 있는 게 아니다. 샤넬백과 마찬가지로 하이패션의 트렌드다. 앨범 재킷만 들고 다녀도 문화적 스타일을 완성해 낼 수 있는 패션물이다.

LP는 열악하다. 모든 측정 자료는 CD나 고음질 디지털 음원이 월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열악한 측정값과 달리 듣기는 LP가 더 낫다. 디지털 기술자들이 통탄해 마지않지만 왜 그런지 모른다. 음악이 측정값도 아니고 그걸 알아야 음악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LP는 불편하다. 길어야 30분이다. 끝까지 가서 ‘틱틱’거리니 다시 틀거나 뒤집어주거나 갈아줘야 한다. 리모컨이 있어서 트랙을 건너뛰거나 다시 듣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손 편지나 마찬가지로 번거로워도 직접 손을 움직여서 다뤄야 한다. 그 뿐 아니다. 탈도 많고 예민하다. 잠시 잘못 다루면 비싼 바늘이 부러지거나 소중한 LP에 깊은 상처가 나기도 한다. 조금만 스쳐도 스피커는 굉음으로 신음한다.

야전(야외전축)이라는 게 있다. 야외로 가져가 틀수 있는 포터블 턴테이블이다. 포터블이라고 들고 다니면 틀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자리에 고정한 뒤 플레이 한다. 헤드폰이나 이어폰 끼고 돌아다니며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달리 말해, 아무 데에서나 들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LP는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며 듣는 음악이 아니다. 턴테이블과 오디오가 갖춰진 거실이나 방 혹은 리스닝룸이 제격이다. 즉, 공간적 제약이 크다.

LP란 손이 많이 가는 아날로그다. 플라스틱이 좋아져서 음질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다. 그런데도 다시 왕으로 귀환한다. 실은 그리 의아한 현상은 아니다. 단지 아날로그 감성 때문만은 아니라 턴테이블 돌리기는 의례적ritual 행위이기 때문이다. 의례는 본능이다.

음악은 단지 귀로 듣는 것보다 어떻게 듣느냐가 중요하다. 헤드폰이나 이어폰 소리로 만족한다면 굳이 힘들게 콘서트홀을 찾거나 록페스티벌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번거롭게 음악을 듣고 음악에 참여하는 걸 선호한다.

제사 지낼 때는 특정 장소와 시간에 향을 피우고 축문을 읽는 등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렇듯 의례는 일상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노래나 춤, 의상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는 결혼이나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LP를 들을 때도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턴테이블과 오디오 공간을 중심으로 음악의 울림에 참여해 자기만의 분위기를 만든다.

어두운 부분 조명이 켜진 리스닝룸에서 조심스레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세심하게 바늘을 올린 뒤 앰프의 볼륨을 조절하고는 자리에 앉아 앨범 재킷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손이 많이 가서 번거로운 일이기에 의례적일 수도 있다. 이런 의례적 행위를 통하면 음악과 나를 잇는 음악적 정서와 의미에 더 쉽게 닿을 수 있다. 때문에 LP는 하이패션의 문화적 트렌드일 뿐 아니라 음악 감상의 왕이기도 한 것이다.

복귀한 왕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세상을 다스리려고도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과 경쟁해 봐야 승산도 없고 의미도 없다. 단지 모두가 완벽하게 동일한 디지털 카피 속에서 너만의 음악, 너만의 감성을 완성하라 이른다. 이렇게 LP는 다시 우리 곁에 보다 여유롭고 풍성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왕의 귀환,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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