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9 16:19

자주 등장하는 동영상이 있다. 운전에 미숙한 여성의 솜씨를 담은 내용이다. 그러면서 늘 붙이는 제목이 ‘김 여사’다. 우리 성씨 가운데 가장 흔한 ‘김’은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고, 뒤의 여사는 결혼한 여성을 지칭한다. 한자로는 女史라고 적는다.

가정을 이뤘으면서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여성을 보통 이렇게 적고 부른다. 우리의 오랜 관습이라기보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아 생긴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원은 퍽 오래다. 중국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 등장한 직함의 하나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지식의 수준이 높아 궁중의 의례와 문물, 전적 등을 다룰 줄 아는 여성이라고 했다. 아울러 왕후(王后) 등을 보필하며 궁중의 각종 절차, 예절, 사무 등을 집행하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여사’는 직급이 상당히 높은 궁녀의 직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성을 높여 부르는 호칭은 퍽 발달한 편이다. 여인(麗人)이나 가인(佳人) 등은 모두 ‘곱다’ ‘아름답다’가 붙어 미모나 품격 등이 빼어난 여인을 일컫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용모가 뛰어난 여인에게 붙는 말인 옥인(玉人)도 마찬가지다. 곱고 부드러우며 색채가 밝은 옥돌에 미모를 견줬다.

붉은 얼굴이라는 뜻의 홍안(紅顔)도 젊고 어여쁜 여성에게 따르는 표현이다. 여성의 붉은 소매를 일컫는 홍수(紅袖)도 원래는 여성의 옷매무새를 일컫다가 이제는 어여쁜 여인을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숙녀(淑女)도 빼놓을 수 없다. 용모가 단정하며 품격, 성품 등이 온화하고 빼어난 여인의 지칭이다.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는 일찌감치 동양 고전 <시경(詩經)>에 등장해 단아한 여인, 뛰어난 남성이 서로 짝을 이루는 흐뭇한 경계를 그렸다.

미모가 아주 뛰어난 여인을 우물(尤物)로 적은 점도 재미있다. 아주 빼어나다는 뜻의 尤(우)를 붙인 점이 그렇다. 청아(靑娥)라고 해도 비슷한 맥락이다. 역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다. 재녀(才女)는 재주가 뛰어난 여성을 가리킨다. 우리는 재원(才媛)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공부 잘 하고 총명하며 특별한 재주를 지닌 젊은 여인이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원전이 있는 말이다. 한(漢)의 무제(武帝)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천거한 이연년(李延年)이라는 궁중 악사의 스토리다. 그는 황제가 무료한 틈을 타서 “홀로 세상과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라는 노래와 노랫말을 지어 불러 그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무제는 “그런 미인이 정말 있어?”라면서 결국 호기심을 품었고, 마침내 미인과 황제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했다. 그녀는 병에 걸려 죽고, 둘의 사랑은 슬픔으로 맺어진다. 오빠인 이연년이 제 동생을 표현하면서 만든 말이 바로 ‘절세가인’이다.

그 말미에 황제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말은 “한 번 돌아보니 성이 무너지고, 두 번 돌아보니 나라(또는 성보다 큰 성곽)가 무너진다”고 했다. 미모의 수준이 성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라니…. 보통 과장은 아닐 테지만 황제는 결국 그에 말렸다.

여기서 나온 말이 우선 경성(傾城), 경성지색(傾城之色)이다. 또 나라마저 기울게 하는 경국(傾國),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절세가인, 경성, 경성지색, 경국, 경국지색 등이 다 유명해졌다. 아주 특별하게 아름다워 온 도시,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리는 미색(美色)을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다시 여사(女史)로 돌아가야 한다. ‘최 여사’라고 하는 사람이 나라 전체를 흔들고 말았다. 대통령은 탄핵의 위기로 몰리고, 보수라는 틀은 그에 따라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대통령 주변의 비서와 심부름꾼 등은 그녀를 ‘여사’로 부르며 열심히 따랐다는 후문이다.

원래의 여사라는 직함이 지니는 교양과 지식은커녕 대통령 그림자에 숨어 호가호위하며 제 배 불리는 욕심만이 가득했던 여인 한 사람으로 나라꼴이 정말이지 말이 아니다. 어떤 호칭이 가능할까. 여사는 터무니없는 존칭이다.

생물(生物)임에는 분명하다. 미물(微物)이라 하기에는 끼친 해악이 너무 광범위하다. 요물(妖物)이라고 해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그저 괴물(怪物)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속이 차지 않는다. 모든 험상(險像)을 다 몰고 왔으니 흉물(凶物)이 적당할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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