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호기자
  • 입력 2017.01.19 17:52
<사진=새누리TV 영상 캡쳐>

[뉴스웍스=이상호기자] “대통령도 차명폰(대포폰)이 있느냐?”

“...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출석해 이렇게 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포폰 사용 이유에 대해 “대통령과 통화하고 이런 부분이 도청 위험이 있을 수 있어 저희 이름으로 사용된 걸 통해 (통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전 비서관은 “우리 정치의 좀 아픈 부분”이라고 논평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픈 부분이다. 정 전 비서관을 포함해 모든 게 다 말이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은 그간 청와대가 밝혀온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공급되는 전화기만 사용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었다.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은 지난해 11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초로 제기했다. 당시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장시호씨가 대포폰을 6개 개설했고 그중 하나를 박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지급받은 전화기 외에 다른 전화기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내부에서 만든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허위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증언은 또 나왔다. 지난 10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최순실과 박 대통령이 통화했다. 최순실과 대통령 모두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씨는 재판에 출석해 “제 명의로 된 것 한 대와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한 것 한 대 등 총 전화기 두 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외에도 여러 대의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소한 최씨가 대포폰의 존재는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내부 인사 중 대통령과 가장 가까웠던 정 전 비서관과 안종범 수석, 청와대 외부 인사 중 가장 가까웠던 최씨가 불법 대포폰을 썼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 셈이다.

대포폰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다. 여기에서 ‘대포’는 허풍이나 거짓말을 일컫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포폰은 ‘차명폰’, ‘차명 휴대전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렇다면 대포폰은 왜 사용할까. 다른 사람 명의의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은 전화기의 사용 주체를 감추기 위해서다. 따라서 보통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며 범죄와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 대포폰이라고 하면 흔히 보이스피싱, 불법 유흥업소, 불법 대부업자 등 범죄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 때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도 대포폰이 등장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대포폰 5개를 사용한 사실이 이석현 민주당 의원에 의해 폭로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들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을 만들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지급했고 이를 통해 지원관실 직원들에게 청와대 하명이나 지시가 내려갔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5개의 대포폰 존재를 알고도 발표하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에 돌려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에는 대포폰을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비상사태 해결에 필요한 경우 ▲(박물관 등) 고객에게 부수적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전기통신설비를 개발‧판매하기 위하여 시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이용자가 제3자에게 잠시 빌려주는 경우다. 최소한의 경우에 한해 대포폰의 존재가 인정된다. 이 경우가 아니라면 대포폰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타인 사용의 제한)와 제97조(벌칙)에 따르면 대포폰을 개설 ·판매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같은 법 제32조의4(이동통신단말 장치 부정이용 방지 등)와 제95조의2(벌칙)에서는 대포폰을 구입하거나 빌리거나 이용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박 대통령은 ‘대포와의 전쟁’을 벌인다고 강조한 과거가 있다. 2014년 2월 검찰, 미래창조과학부,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대포폰과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명분은 ‘대포폰‧대포차 등 불법 차명물건 범죄가 서민생활의 안정을 해치고 사회 불안을 조성하고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대통령 본인이 이 주장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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