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9 17:55

 

뚝섬 서울의 숲 전경이다. 조선시대 군대가 훈련을 펼쳤던 곳이다. 조선의 임금은 군대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이곳으로 가끔 행차했다고 한다.

그 예하의 병력이 팔기병八旗兵이다. 우선은 깃발을 의미했고, 따로 나눈 병력의 복색服色을 그에 다시 맞췄다. 순서는 노랑(黃), 하양(白), 빨강(紅), 파랑(藍)이다. 각 네 가지 색깔에 아무런 무늬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正(정)이라는 글자를 붙였고, 테두리를 별도로 둘렀으면 鑲(양)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예를 들어 노랑의 경우, 正黃(정황)이 있으면 鑲黃(양황)이 있다. 正(정)은 鑲(양)에 비해 우월하다.

그런 규칙에 따라 각 네 가지 색깔의 깃발과 복색을 차등적으로 편제한 군대가 바로 팔기병이다. 그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깃발을 가리키는 旗(기)라는 글자에는 전쟁의 피 냄새가 가득하다. 우선 이 글자가 등장하는 성어는 대개 전쟁과 관련이 깊다.

우리 사전에 올라있는 偃旗息鼓(언기식고)라는 성어가 그렇다. 깃발(旗)을 누이고(偃) 북(鼓)을 멈춘다(息)는 엮음이다. 깃발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과거의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였다. 북 또한 마찬가지다. 공격을 명령할 때 장수는 북을 울린다.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 북소리는 바로 피를 뿌리는 공격의 동의어다. 그런 깃발을 내리고 북을 멈춘다? 바로 싸움을 멎는 휴전休戰의 의미다.

旗鼓相當(기고상당)이라는 중국식 성어도 있다. 깃발과 북, 즉 전쟁을 위해 마련한 진용陣容을 가리킨다. 혹은 싸움을 벌이는 양쪽 진영이 구축한 세勢의 크기를 가리킨다. 그 둘이 서로 맞설 정도라는 뜻이 相當(상당)이다. 전쟁의 당사자 둘이 보이는 기세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대등하다는 의미다.

重整旗鼓(중정기고)라는 말도 있다. 역시 중국에서 많이 쓴다. 거듭(重) 깃발과 북(旗鼓)을 정비(整)한다는 가리킴이다. 싸움에서 밀려 패하거나 후퇴했을 때 다시 자신의 병력을 정비해 싸움터에 나서려는 사람의 준비 태세를 가리킨다. 싸움에서 패함이야 병가兵家에서는 늘 있는 일(常事)이니 이런 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뚝섬은 그냥 뚝섬이 아니다. 그 유래에 전쟁의 깃발로써 드리워진 흔적이 만만찮다. 조선의 왕들이 군사의 준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이었고, 그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이 纛(독)이요, 그에서 다시 우리말 발음으로 전화해 나온 이름이 ‘뚝섬’이다.

전쟁을 찬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함부로 대하거나 잊으면 아주 곤란하다. 전쟁은 피를 부르는 일이다.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는 그를 “죽느냐 사느냐, 남느냐 망하느냐를 가르는 일,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자로 적으면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호전적이며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은 늘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부쩍 높이는 존재다. 평화적 통일에 힘을 기울여야 하겠으나, 그로부터 번지기 쉬운 전쟁의 가능성을 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마침 뚝섬이 그런 역사의 흔적을 지닌 곳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단순한 깃발의 의미만 읽을 일이 아니다. 생사生死와 존망存亡의 무거운 그림자가 그 안에는 있다. 우리가 늘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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