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20 15:47

 

중국 간쑤의 란저우(蘭州) 구간을 지나는 황하. 북쪽의 이 강 물줄기는 가을이면 벌써 얼어붙는다. 그 언 강을 넘어오는 유목민족의 침략은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성어로 표현한다. <사진=조용철>

 당시 북송의 상황은 아주 위급했다. 동북에서 발흥한 여진족 금나라가 북송의 수도를 직접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송이 이후에 맞이했던 운명은 잘 알려져 있다. 결사항전(決死抗戰)보다는 투항(投降)을 택하려 했던 문약(文弱)함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 모두가 망한 뒤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 남송(南宋)을 세우고 말았다.

이 ‘가을 하늘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말은 결국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성어로 발전했다. 이 말에 우리가 자주 갖다 붙이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성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쟁에서 한참 비켜서 있던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던 한반도의 환경과, 수시로 전쟁의 불길이 번지는 중국 대륙의 환경은 이렇게 차이가 컸다고 봐야 한다.

중국인에게 ‘서늘한 날씨의 가을, 북녘의 말이 살을 찌우는 가을’은 곧 공포의 계절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산시 지역의 북단에 있는 황하의 물은 그런 가을이 깊어질 때 곧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더 북쪽에 있는 유목민의 말은 왕성하게 자란 여름 한철의 풀을 뜯어 먹고 이미 힘을 키운 상태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북쪽 유목의 중원을 향한 침략 행위다.

그러니 북방의 중국인들에게 청명한 가을 하늘과 쌀쌀해지는 날씨는 수확과 풍요로움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곧 닥칠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해 곡식을 거두고, 심한 경우에는 짐을 싸서 남쪽으로 도망칠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계절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등불에 책을 가까이 대고 교양을 쌓는 한가로움은 없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다급함이 묻어 있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천하 아홉 요새 중 으뜸의 요새를 간직하고 있는 산시는 전쟁의 땅이다. 중국 문명의 새벽, 춘추전국 시대의 초반에 불붙기 시작했던 전쟁은 명나라 말엽까지 줄곧 이어진다. 북쪽의 유목 민족은 이 산시의 기러기 관문을 늘 넘나들었다. 초기 흉노부터 돌궐, 달단, 몽골 등 주체를 달리 하면서 유목 민족은 문물이 발달했던 중원지역을 공략한다.

북부의 기러기 관문과 함께 산시 남부 훙둥(洪洞)이라는 곳에는 커다란 홰나무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를 ‘洪洞大槐樹(훙둥다화이수)’라고 적고 부른다. 이는 인구가 원래 정착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이민(移民)’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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