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7.01.23 10:36

좋게 멀어지든 나쁘게 멀어지든 의미 있는 누군가와 멀어진다는 것은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다. 이 변화는 아무리 작아도 이별의 슬픔보다는 큰 법이다. 슬프고 당황스러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상대방을 유유히 보내주고 그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제임스 티소의 ‘머지 강에서 안녕(Good bye, On The Mersey, 1881)’은 미국으로 이민하여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인연을 축복하며 보내주는 그림이다. 배를 탄 사람들과 강가에 선 사람들이 이미 멀어진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그들 손에 쥐여 흔들리는 흰 손수건이 얼마나 우아한지 모른다.

James Tissot <On The Mersey, 1881>

영국의 패셔니스트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의 그림들은 말하자면 풍속화다. 풍속화란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이는 시대적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의 그림은 유행의 기록을 담고 있다. 옷과 모자, 지팡이, 소품, 그릇 등 그 시대에 사용했던 공예와 디자인이 어떠했는지 티소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티소는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프랑스 태생이다. 인상주의의 핵심 인물 마네와 드가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연스레 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다만 그는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소극적인 관조에 만족한다.

이때 티소는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생하는데, 1871년의 파리 코뮌 사건이 그것이다. 보불 전쟁 이후 노동자 중심으로 일어난 파리 코뮌은 72일간의 삼일천하를 이뤘을 뿐, 곧 정부군에게 무너졌다. 이때 파리 코뮌의 주요 인물로 지목받은 티소는 런던으로 급히 도망한다.

능력있는 화가는 영국에서도 곧 자리를 잡는다. 티소의 장기인 매력적인 인물 초상은 영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예나 지금이나 잘 팔리는 그림은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공격을 받는다. 티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장기를 잘 살려 사교계의 화려함을 기록한다. 이때 티소는 일생의 연인 캐슬린 뉴턴을 만나 함께 살면서 행복의 절정기를 누린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살았던 1876년부터 1882년까지의 몇 년은 그의 마지막 행복의 시기였다. 캐슬린의 사망 이후 티소는 탐미적인 그림을 접고 그리스도의 삶을 그리는 종교화에 매진한다.

앞서 소개한 그림은 티소가 캐슬린을 보내기 이전 해인 1881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미 캐슬린은 폐결핵으로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배를 타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티소가 성공하여 이별의 그림을 그리는 기분은,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예감하며 이별의 그림을 그리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정든 곳에서 떠나가더라도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림의 흰 손수건에 담아 그리지 않았을까. 그녀가 떠나가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담아 그리지 않았을까.

여자(캐슬린 뉴턴이 모델)가 쓴 검은 모자에 달려 있는 모피 장식, 장갑 낀 손목에 두 줄 놓아진 수, 세 단으로 접혀진 코트 옷깃, 손목으로 갈수록 조금 좁아지는 소매, 허리 부분에 벨트 대신 박은 가느다란 천, 풍성하게 늘어진 코트 단과 그 아래로 보이는 레이스 안감까지 티소는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리가 아파 일어서기 어려운 할머니는 간이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할머니가 두른 검은 숄의 줄무늬는 리본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칼라 옷깃에는 구슬 같은 것으로 장식되어 있다. 어린 여자아이의 드레스에도 비슷한 소재의 검은 천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리본 장식법은 당시에 유행하던 것 같다. 

화면 우측 남자는 갈색 가죽 장갑을 끼고 있고 검은 코트를 입고 있다. 코트의 허리 벨트와 허리 고리는 요즘 핸드메이드 코트처럼 반듯하고 넓게 재단되어 있다. 남자의 바지는 약간 통이 넓고 긴 편이다. 할머니가 앉은 간이의자와 비슷한 의자들이 화면 앞쪽에 널브러져 있다. 의자에 댄 천은 양탄자 천처럼 도톰하고 무늬가 복잡하다. 티소의 그림은 볼거리가 너무 많아 눈이 피곤할 정도다.

머지 강을 사이로 두고 이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이겠지만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이별한다. 최선을 다해 모자를 흔들고 손수건을 흔들며 이별의 슬픔에 행운을 비는 것으로 정성을 다한다. 나는 여기서 이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읽는다.

사람이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헤어지면 인생의 판이 달라진다. 그러나 새로운 판이 좋은 판으로 바뀌게 될지 어려운 판으로 바뀌게 될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헤어짐의 슬픔에 정성을 다하고 다가올 새로운 인생을 정성으로 맞이하는 것이 어떠한가. 가는 인연을 귀하게 보내고 새로 올 인연을 놀랍게 기대하면 된다. 나를 아프게 한 어마어마한 사람을 귀하게 보낸다면 새로운 내 인생의 판은 분명 귀하게 다시 짜일 것이다. 이별의 슬픔이 귀하고 놀라운 인생을 열어줄 것이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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