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23 14:20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보복(報復)이 횡행하면 그 사회는 원한과 응징이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의 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감성 복합체인 사람은 늘 질시와 앙갚음의 틀에서 놓여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 중 앞의 報(보)는 초기 글자꼴이 우선 심상찮다. 사람이 꿇어 앉아 있고, 그 뒤에 손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사람이 잡혀 있거나, 적어도 꿇어앉아서 다음 단계의 조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다음 단계의 조치’는 흔히 행형(行刑)이리라 짐작한다.

즉 전쟁의 포로로 잡혀 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거나, 범죄 등을 저질러 잡힌 뒤 처형을 기다리는 이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글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 또는 전쟁 등으로 잡힌 이를 처벌하는 행위의 지칭이다. 우리말로 풀자면 ‘갚다’ ‘갚음’ 등이다.

뒤의 글자 復(복)의 초기 글자꼴은 성곽(城郭)의 출구 등에서 사람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모습이다. 성의 문을 통해 사람이 빠져 나가고 혹은 돌아오는 행위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로써 얻은 뜻이 ‘가고 오다’ ‘오고 가다’의 새김이다. 이를 테면 왕복(往復)이다.

이를 감안해서 풀어보면 보복(報復)은 사람을 처형하거나 처단하는 일, 누군가에게 당한 경험을 되돌려 주는 일이다. 빚을 갚는 일이되, 그보다는 의미가 격렬하다. 단순하게 돈으로 진 빚이 아니라 마음으로 입은 상처, 직접 몸으로 당한 아픔을 되돌려주는 행위다.

보수(報讎)는 직접적인 표현이다. 뒤의 讎(수)는 讐(수)로 적기도 한다. 같은 뜻의 글자다. 원래는 문장을 다듬는 교열과 관련이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같은 텍스트를 두고 마치 싸우듯이 치열하게 교열하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그로써 나중에 얻은 뜻이 ‘원수(怨讐)’다.

그런 원수를 진 사람에게 보복하는 행위가 보수(報讎)다. 보구(報仇)라고도 적는다. 여기서 仇(구)는 ‘짝’을 일컫기도 하지만 많은 쓰임새는 ‘원수’에 있다. 따라서 보구(報仇)는 보수(報讎)와 같은 뜻의 단어다. 복수(復讎)는 우리말 쓰임이 많다. 원수에게 앙갚음하는 행위다.

요즘처럼 강추위에 내리는 눈도 원수를 갚는 행위에 등장한다. 설치(雪恥)라는 단어다. 여기서 눈을 가리키는 雪(설)은 동사형이다. ‘씻어내다’의 새김이다. 따라서 설치(雪恥)라고 하면 남에게 당한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행위다. 그저 “허~할 수 없지”라면서 털어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찾아가 앙갚음을 하는 일이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설욕(雪辱)이다. 요즘은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에게 졌다가 그를 되갚아 이겼을 때 사용한다. 그러나 원래는 남에게 당한 상처를 고스란히 되갚는 일로서, 복수나 복구 또는 보수 등 앞에서 적은 말과 동의어다.

중국인들은 기다렸다가 때가 오면 갚는 일에 능하다. 남에게 받은 고마움을 돌려주는 일은 아니다. 제가 당했던 어려움을 반드시 되갚아 복수하는 행위다. 秋後算帳(추후산장)이라는 말이 그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성어다.

이 말 자체는 뭐라 탓할 게 없다. 중국 북방은 한반도처럼 가을에 이르러야 추수를 한다. 추수를 해야 농민은 수입이 생긴다. 따라서 농민이 한 해 졌던 빚을 제 곡식 거둔 뒤에 계산해서 갚는 일을 가리켰다. 여기서 秋(추)는 가을걷이인 추수(秋收), 算(산)은 계산, 帳(장)은 빚을 기록한 장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살벌한 말로 변했다. 서풍이 부는 쌀쌀한 계절이 죄수를 처형하기 좋은 쇠, 즉 金(금)의 절후로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정통 왕조는 보통 가을에 죄수를 처형할 때가 많았다. 특히 사형수다. 그를 지칭하는 말이 秋後問斬(추후문참)이다.

‘秋後算帳(추후산장)’이 나중에 얻은 새김은 그와 맥락이 같다. 가을걷이 끝낸 뒤에 진 빚을 갚다‘에서 ‘두고 기다렸다가 여건을 충족하는 시기에 이르러 한꺼번에 앙갚음을 하다’는 뜻으로 말이다. 이런 말이 비교적 정교하게 발달한 곳이 과거의 중국이고, 현재의 중국이다.

전란이 빗발치듯 닥쳤던 곳이라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는 매우 깊었고,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게 상처를 던진 사람에게 되갚는 일도 잦았다. 그러니까 가을걷이 한 다음에 추수의 감사를 올리는 일보다 제게 상처를 남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이 흔했을 테다.

요즘 중국의 행보가 대단하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DD)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벌이는 중국의 조치가 끈질기다. 우리는 이런 모습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그 인문의 바탕을 알고 나면 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류 콘텐츠의 진입을 막는 데서 퍽 멀리 나아가 클래식 연주자들의 입국 비자까지 거부하는 태도를 두고서는 논설이 많다. 각종 기업 규제는 그렇다 쳐도 문화의 바탕으로 여겨지는 영역의 인적 교류까지 제한하는 일은 중국의 그릇을 의심케 한다.

그 정도의 조바심이 온당할까.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제 국가의 이익을 따진다고는 하지만, 미사일 방어체계는 북한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생각보다 치졸(稚拙)하고 유치(幼稚)하며 졸렬(拙劣)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저래 중국이 요즘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로서는 새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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